[오늘과 내일/허승호]유시민 전 복지장관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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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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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강고한 정치적 비토세력을 가지고 있지만 행정가로서는 유능했다는 평가도 많다. 다수의 복지부 공무원들은 그를 ‘역대 장관 중 가장 합리적이고 소통하는 장관’으로 친다. 그가 최근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왜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 주느냐”는 것. 그는 아주 적극적인 복지론자이지만 장관 시절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개혁을 해냈다. 지속 불가능한 복지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국민 불신임장’을 받기도 했다.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요즘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논쟁이 뜨겁다.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복지를 베푸는 보편적 복지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쟤는 무료급식 대상자야”라는 같은 반 친구들의 수군거림(낙인효과)을 차단할 수 있다. 또 극빈층으로의 계층 추락을 완화하는 예방적 효과가 있어 사회 안정성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필요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는 비용에 비해 서비스의 질이 좋다.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심리적, 사회관계적 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낙인효과를 감수해야 한다.

논쟁이 가열되면서 보편복지, 선별복지라는 꽤 전문적인 용어가 일반 국민에게 친숙해졌다. 기자의 생각에 이 문제는 2012년 총선 및 대선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지형으로 볼 때 복지와 안보만큼 뜨거운 이슈가 또 있을까 싶다.
좋은 일이다①. 국민 실생활과는 무관한 일로 여야가 멱살잡이하거나, ‘누가 누구와 한편이 됐다’는 뉴스에 주목하던 기존의 정치 행태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 이는 또 우리가 ‘앞으로 어떤 형태의 복지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할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사회가 성숙했다는 뜻이다. 경제적 토대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성장 역시 부끄럽지 않은가? 적극적 능동적으로 이 상황을 맞을 만하다.

한국은 국방비가 전체 재정의 10%다. 이 때문에 복지 재원이 너무 짓눌려 국가 위상에 비해 복지가 취약한 편이다. 이런 여건을 고려할 때 효율성을 앞세워 제도를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졌듯이 최근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복지강국에서도 ‘보편복지의 축소’를 통한 효율 높이기가 대세다.

그렇다고 선별복지 외길로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보편복지의 대표적 형태다. 이들 4대 사회보험을 통해 우리 사회는 한층 두터워졌다. 한편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장애인연금 등은 선별복지 모형이다. 이미 보편과 선별, 두 모델이 혼재돼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필요에 따라 적절히 조합하고 조화시켜 쓰면 된다.

염려스러운 것은 이 논의가 편가르기식 흑백공방으로 흐르는 것이다②. 4대강, 세종시 등에서 보듯 정책 어젠다가 정치에 오염되면 이성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드물다. 대개 정쟁도구로 전락해 당파적 이익에 복무하고 만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그렇게 되면 개별 복지정책의 장단점, 우선순위, 적정 수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실종된다.

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③. 복지가 정치바람을 타면 처음엔 정치가 복지 이슈를 악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중에는 정치가 복지에 질질 끌려다니며 나라꼴을 다 망쳐 놓는다. 악영향이 깊고도 길다. 남유럽 국가들이 겪는 위기의 본질이다. 유 전 장관이 ‘지속 가능한 복지’를 부르짖은 것도 바로 이런 일을 염려해서이리라.

어쩌랴. 우리 사회의 담론 소화 능력과 국민의 정치 수준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수밖에…. 우리는 지금 ①②③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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