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과학자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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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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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스캔들이 나기 전 황우석 박사는 2005년 관훈토론회에서 이 말을 해 ‘감동’을 주었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세균학의 아버지’인 루이 파스퇴르(1822∼1895)였다. 그는 조국 프랑스가 독일(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에서 패배하자 분노하며 과학자의 조국을 말했다. 과학지식 자체는 보편타당한 진리이지만 과학자는 이를 활용해 조국에 기여할 책무가 있다는 뜻이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인 존 폰 노이만(1903∼1957)은 독일과 스위스에서 활동하다 히틀러의 집권이 다가오자 미국으로 망명한다. 양자역학의 최고봉이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참가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에 원폭을 투하하고 싶었겠지만 독일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원폭은 그때까지 ‘1억 총옥쇄(總玉碎)’를 외치며 버티던 일본에 투하됐다.

▷중국과학원 원사(院士·과학기술분야 최고 영예 칭호)인 스창쉬(師昌緖·91) 박사는 중국 스텔스 전투기 젠(殲)-20의 개발에 청춘을 바쳤다. 스 박사는 제트기 엔진에 쓰이는 특수합금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시안(西安)의 시베이 공학원을 졸업한 뒤 1948년 미국으로 떠난 초기 유학파다. 6·25전쟁 기간에 미국이 중국으로의 출국을 금지했던 35명의 중국 과학자 중 한 명에 그도 포함돼 있었다. 1955년 출국금지가 풀리자 스 박사는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중국행을 택했다. 스 박사의 지도교수가 “왜 험난한 길을 가려는가”라며 만류했지만 그는 “조국이 일할 사람이 없어 어려운데 외면할 수는 없다”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문화혁명의 암흑기 속에서도 제트기 엔진 개발에 매진한 그가 17일 중국 정부로부터 국가최고과학기술상을 수상했다. 중국 정부는 “과학자에게는 사상도, 당성(黨性)도 묻지 않는다”며 외국에서 공부한 과학기술 인력을 끌어들였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독특한 민족이지만 중국인도 이에 못지않은 것 같다. 미국의 한국인 이공계 박사 가운데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율이 73.9%라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 결과는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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