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에라스뮈스와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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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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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어난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은 한반도가 평화 체제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정전이라는 형태의 반전시 상태에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60년 가까이 남북 대치하의 평화에 익숙해 있던 한국인은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충격에 휩싸였고 냉전 종식 이후 커져 왔던 ‘평화의 목소리’는 잠잠해지고 북한과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전쟁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의한 군사도발 사건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확립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어야지 국내외 호전주의자들이 한반도에 민족상잔과 민족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전쟁을 정당화하게 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호전주의가 승할 때마다 우리는 유럽 최고의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뮈스(1466∼1536)로부터 평화 만들기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에라스뮈스는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간 종교전쟁의 핵심 전장이었던 네덜란드 출신의 가톨릭 신부였다. 그럼에도 그는 가톨릭 편을 들지 않고 “가장 불리한 평화가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 더 낫다”면서 유럽국가 간의 종교전쟁을 반대하였다.

그가 전쟁을 반대한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이득 및 비용에 관한 공리주의적 계산에서 나왔다. 전쟁의 비용과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평화유지비의 10배가 넘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에라스뮈스는 전쟁론자에게 과감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필요하면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

“필요하면 평화를 사라”의 외침

우리가 참혹한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평화를 사는 일은 겁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용기 있는 행동이다. 더구나 국지전이 발발하더라도 북한이 입을 피해에 비해 우리가 입을 경제적 피해는 열배, 백배 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정치인이 담당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아무리 북한의 독재자가 북한 동포를 굶겨가면서 핵무기와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는 악마와 같은 존재라 하더라도 그들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나라를 책임진 정치가의 임무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책임윤리가 있는 정치가는 악마와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는 유화론자 친북주의자 빨갱이라는 비난이 무서워 북한 독재자와 대화하는 일을 겁내서는 안 된다. 세계 10위권의 우리 경제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북녘 땅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평화유지를 위한 대화야말로 용기 있는 정치다.

군사적 충돌과 긴장상태에 있을 때에는 강경론이 득세하고 강경론자의 지지율이 올라간다. 에라스뮈스도 “대부분의 국민은 확실히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갈망한다. 그러나 국민의 고통 위에 자연스럽지 못한 행복을 추구하는 극소수만이 전쟁을 원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문제는 극소수의 이기심이 선한 대다수의 평화 갈망을 압도한다는 데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장기적으로 강경론은 선거에서 패배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권과 공화당은 이라크전쟁으로 2007년 선거에서 패했고, 천안함 침몰 이후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패했다. 강경한 구호에 잠시 동안 국민은 환호할지 모르나 강경론이 초래할 비용을 부담해야 할 때가 오면 유권자는, 특히 젊은 유권자는 비용을 차갑게 계산하는 현실주의자로 변한다.

지금 한반도와 주변 해역에는 위험할 정도로 초강대국의 군사력이 밀집해있다. 미국 7함대 항공모함 전단이 서해바다에 진입하여 중국이 바짝 긴장해 있고, 한일군사협정 논의로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여 신북방 삼각동맹 구축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동북아에서 평화의 기운보다는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에라스뮈스의 경구를 되새겨야 한다.

안보리스크 해소 지혜 모을 때

“전쟁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쟁은 달콤하다.” 베트남전쟁 영웅인 척 헤이글 상원의원이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할 때 했던 이야기를 500년 전에 이미 에라스뮈스는 지적하였다. 전쟁의 참혹함을 아는 정치인은 감히 전쟁하자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전쟁에 대비해 군비를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라스뮈스의 경제평화론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를 사는 일이 훨씬 비용이 덜 들고 인명의 희생이 적으며 한반도 안보리스크를 줄임으로써 한국경제에 활로를 열어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안보에 토대를 둔 평화정책’을 신묘년의 핵심정책으로 제시하였다. 냉전시대에 미국에서는 진보적인 민주당 정권이 전쟁을 시작하면 보수적인 공화당 정권이 전쟁을 마무리하곤 했다. 평화를 만들고 유지하기보다 더 큰 보수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이명박 정권도 위협받는 한반도 평화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토끼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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