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교육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는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엄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A학원은 이른바 자기주도형 수학학원이다. 강의실 앞에 강사의 책상이 있다. 학생들은 독서실 같은 칸막이 책상에서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앞으로 나와 강사에게 물어본다. 강사가 일방적으로 수업을 끌고나가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학습계획을 짜고 공부한다는 의미에서 자기주도형 학원이다. 한 달 수업료가 50만 원가량인데도 빈자리가 없다. 서울 대치동 목동, 경기 분당 일산에서 경시대회 및 특목고 대비학원들이 간판을 바꿔 달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교육을 없애겠다며 경시대회 성적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주도적 학습과 입학사정관제 입시전형을 강조하자 학원들이 재빨리 변신한 것이다.

국세청은 2009년 입시교육시장 규모가 7조6730억 원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3조9907억 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된다고 발표했다. 납세 실적이 기준인 기초통계여서 어떤 통계보다 정확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이는 동안 입시학원(예체능 제외)은 3만947개에서 5만4714개로 77% 늘었다. 특히 동영상 강의를 하는 기업형 입시학원들이 호황을 누린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7일 주요 대학 총장들과 만나 입시에서 논술시험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그는 “논술은 학교에서 준비하기 어렵다”며 논술 대신 입학사정관제 전형이나 내신 위주로 선발하라고 권유했다. 논술이 학생들의 논리력을 길러주고, 대학들의 우수 학생 선발에 도움이 된다면 줄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고교에서 준비를 해주는 게 옳은 방향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를 꾸준히 한 학생들이라야 논술에서 유리하다. 단기속성 과외로 성적을 올리기가 가장 어려운 시험이 논술이다. 이 장관은 논술학원이 번창할까 봐 우려하겠지만 사교육을 잡기 위해 교육의 본질을 해쳐선 안 된다.

이 정부는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공약으로 내걸어 놓고 집권 후에는 사교육비 줄이기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했다. 특목고 죽이기와 대학입시에 대한 간섭이 노 정부 때보다도 심하다. 대증(對症)요법이 통하지 않는데도 정부는 ‘두더지 잡기식’ 대책에 매달리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사교육을 없애기는커녕 독서이력, 봉사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 스펙관리를 위한 새로운 컨설팅 시장을 만들어냈다. 가난한 학부모의 소외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작 사교육은 잡지 못하면서 수월성(秀越性) 교육과 대학 자율성을 죽이는 교육정책을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지 답답하다.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졌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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