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정이현]이 땅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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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는 아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간혹 친구의 아기들을 만날 때면 그 작고 여린 생명체가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고 사랑스러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자 그럼 네가 한번 안아 봐.” 그러나 아기 엄마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며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빼고 마는 것이다. 내 우악스러운 팔로 그 연약하고 가느다란 몸을 잘못 누르기라도 하는 날엔? 어쩌면 그런 행동의 무의식에는 내가 과연 작은 생명을 안전하게 보살필 자격이 있는 제대로 된 어른인지에 대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아기를 낳게 되었다.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겨주었을 때 뜨거운 감동보다 먼저 찾아온 건 놀라움이었다. 내가 아무런 심리적 저항 없이 이 작디작은 아기를 꼭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니.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세상의 어떤 누구도 나보다 더 우리 아기를 꽉 끌어안을 수는 없다는 것을. 비로소 엄마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어릴 때 늘 궁금했던 게 있다. 우리 엄마의 본명으로 엄마를 부르는 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 엄마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엄마들은 늘 ‘똘이(가명) 엄마’였다. 남편과 자식의 뒷전에서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엄마의 알뜰한 보살핌 속에서 많은 딸은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엄마처럼 수동적인 인생을 살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자랐다. 그렇다면 21세기, 그 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입소문 육아정보에 귀가 쫑긋

2010년 그녀들은 ‘맘(mom)’이 되어 나타났다. ‘똘이 엄마’ 대신 스스로를 ‘똘이 맘’이라고 칭하는 젊은 엄마들은 마치 새로운 시대의 모성을 대표하는 듯이 보인다. ‘맘’은 영어로 ‘엄마’의 뜻이지만 ‘똘이 맘’은 여러 면에서 이전의 ‘똘이 엄마’와 변별된다. “예전에 우리는 그런 거 모르고 키웠는데…”가 엄마 연배의 레퍼토리라면 맘들은 다르다.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빠른 정보성으로 무장한 그녀들의 슬로건은 ‘아는 게 힘이다’인 것 같다. 어떤 유모차가 좋다더라, 어떤 기저귀가 좋다더라 같은 정보는 기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능동적으로 공유하고 활발히 경험을 나눈다. 이런 맘들이 무엇보다 신뢰하는 건 같은 맘 사이의 입소문이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육아의 특성 탓인가 아니면 나이 든 엄마로서 물정에 어두우면 안 된다는 강박 탓인가. 나 역시 이런저런 입소문을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만삭 사진, 산후조리원, 50일 사진, 백일 사진, 늦어도 6개월 즈음에는 이유식을 시작해야 하고 너무 늦지 않게 돌잔치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는 등 맘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육아 스케줄을 착착 따라 지키지 않으면 어쩐지 무심한 엄마가 된 듯한 미묘한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월령에 맞춘 적절한 장난감과 유아도서를 사주는 것도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끊임없는 선택의 찰나에 직면해야 했다. 만삭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백일 기념사진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찜찜했다. 다른 집은 백일 사진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동안 나만 모르고 살았을 뿐 아기 사진은 이미 커다란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가격대별로 책정된 수많은 패키지가 존재했던 거다. 현명한 똘이 맘이 되고 싶었건만 현실은 요원했다. 결국 사진관 측의 권유를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에는 다들 이 패키지로 한다”는 말이 선택에 결정적이었음을 고백한다.

똘이 엄마가 자기 이름을 비자발적으로 지우고 살았던 피동적 존재라면 똘이 맘은 자발적으로 ‘맘’이라는 지위를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능동적인 개인의 선택으로 포장되어 있을지라도 실은 그 마디마디에 상업주의적 손길이 교묘하고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똘이 맘은 아이라는 상징을 통해 새로운 소비를 주도하고, 소비자본주의에 매몰된 새로운 모성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계층인가? ‘똘이 맘 안녕하세요. 백일 사진 앨범 나왔으니 찾아가세요’라는 e메일에 정색을 하고서 ‘저를 똘이 엄마로 불러주세요’라는 답장이라도 써야 하나.

‘엄마 노릇’ 초보들의 두려움이란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 똑똑하고 모르는 것 없어 뵈는 똘이 맘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어쩌면 나와 똑같은 불안감일 거라고. ‘과연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그런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고립된 섬 같은 집 안에 갇혀 동분서주하는 젊은 맘에게 저쪽 섬에서 다른 맘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연대감만큼 고마운 건 없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똘이 맘, 힘내세요. 힘들지만 우리 어디에도 휘둘리지 말기로 해요. 그리고 언젠가는 맘스월드를 넘어 더 넓은 곳에서 만나요.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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