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창혁]내게도 너처럼 예쁜 딸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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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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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총의 이야기는 관심 없고, 김은총이 여고 3학년이라는 사실만 부각됐다는 너의 불만을 알면서도 결국엔 이 말부터 하고 마는구나.

그젯밤, 새하얀 설편(雪片)의 향연을 바라보며 네가 보낸 편지를 읽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에세이 대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남긴 너의 글, 프레시안에 실린 너의 인터뷰, 그리고 너의 에세이… 모두가 내겐 편지처럼 다가왔다. 나카야 우키치로(1900∼1962)라는 일본의 과학자는 눈을 ‘하늘에서 보낸 편지’라고 했는데, 마침 눈발이 난분분하던 밤이라 그렇게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인권위 수상 거부, 모두의 문제


‘언론은 있지만 여론이 없는 학교.’ 고등부 대상으로 선정된 너의 에세이 제목을 보는 순간, 사실 좀 긴장했다. 너는 학교 안의 이야기를 썼지만, 네가 던진 질문은 교내 신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교내 신문은 그 근본 목적대로 학생의 이야기를 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전제되지 않는 한 시시콜콜한 교내 소식은 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학생의 여론’은 담을 수 없다는 점, 그렇다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학교의 신문’일 뿐이라는 게 너의 논지였지? 두발자유에 대한 기고문이나 교사의 수업방식 또는 학교급식 운영에 대한 비판기사, 학생이 제외된 학교 운영에 대한 사설이나 흔히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사장이나 학교 재단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학생들의 주장’으로 예시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논지 전개를 위한 예시(例示)임을 안다.

그보다는 인권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향유해야 할 권리’인데, 학생은 미성숙하다는 이유로 마치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받고 있으니, 인권의 기본범주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줄 사회적 인식이 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네 글의 중간결론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 현실이 안타까웠다. 좀 극단적인 3단 논법이긴 하지만 네 나이 때의 글쓰기를 생각하면 그리 큰 결함은 아니었고….

그런 너의 인권감수성에 현병철 인권위원회의 오늘이 얼마나 한심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미안하다. 미안하면서도 네가 자랑스럽다. 에세이 때문도 아니고, 너의 수상 거부 때문도 아니다.

수상을 거부하고 엄마한테 돈을 빌려 태국여행을 다녀왔다지? 엄마한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는데 법적 최저임금(4110원)도 안 되는 시급을 준다는 말에 ‘거부’했다지? 인터뷰에는 “돈이 필요했지만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곳에서 일할 수 없었어요.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었어요”라고 돼 있더구나. 그 말이 자랑스러웠다.

미안하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너의 인권감수성이 바로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최근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조영래 평전’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분별 있는 열정’이었다. 고 조영래 변호사는 누구보다 인권감수성이 깊고 넓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이성과 과학에 호소했고, 인권을 향한 그의 열정과 감수성은 분별 위에 서 있었다. 분별 있는 열정이 아니었다면 그도 1970, 80년대를 명멸한 ‘인권운동가’의 한 사람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변호사 자격증도 그의 분별 있는 열정의 하나였다.

하루 4시간도 안 자면서 공부를 하다 ‘그게 진짜 내 길인지 아닌지’ 고민이 깊어지면서 인권단체 활동을 하게 됐다지?

이제 성인이 되면 또 다른 고민,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고민에 맞닥뜨리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열정과 분별을 아름답게 교직(交織)해내길 바란다. 그럴 수 있음을 봤다. 네 아빠가 부럽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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