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호]자율없는 자율고의 예견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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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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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51개 자율형사립고(자율고) 지원이 마감되었는데 이들 중 14개교는 정원미달이었다. 서울에서는 추가 지원에도 불구하고 26개교 중 9개교에서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어떤 자율고는 일반고로 환원해 주도록 요청했다가 번복했다. 이런 일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고 미달 사태의 원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규명될 수 있다. 하나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오판과 실책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고의 제한된 자율성이다.

학생선발 손발 묶고 2배로 늘려

서울시의 경우 올해 자율고 지원자는 지난해보다 40%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자율고 수는 작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간단한 산수를 적용해도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서울의 경우 많은 교육전문가가 추가모집에 의한 충원에 회의적이었지만 유독 교과부만은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올해 신설 인가를 받은 전국의 자율고 20여 곳 중 남자고등학교는 19개교다. 자율고의 신설과 같은 중요한 교육정책 결정에서 남녀 성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자율고 정책이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지만 교과부는 전국의 자율고 수를 2012년까지 100곳으로 확대한다고 하니 염려스러울 뿐이다.

교과부의 실책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자율의 제한에 있다. 자율고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기저인 자율과 경쟁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사업이다. 일반적으로 학교의 자율은 학생선발, 교육과정 운영, 재정 등 크게 3가지 분야에서의 자율을 의미한다. 이 중 학부모의 가장 큰 관심은 학생선발이다.

현재 자율고에는 교육과정 운영과 재정에서 약간의 자율권이 부여될 뿐, 학생선발은 여전히 교과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는다. 수업료는 일반고의 3배를 지불해야 하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생구성 자체가 일반고와 대동소이하다면 굳이 자율고를 선택하려 하겠는가? 교과부도 나름대로 고민은 있다. 자율적인 학생선발은 자칫 과열경쟁을 야기하고 사교육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다.

자율적인 학생 선발이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과열경쟁과 과도한 사교육은 분명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사교육의 억제가 교육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원리이자 목적일 수는 없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포퓰리즘적 사고다. 사교육의 확산을 막기만 하면 우리 교육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교육의 경감이 한국 교육의 지상과제이기에 교과부가 자율고의 학생선발권을 통제한다면 소위 명문대의 학생선발권 역시 극도로 제한해야 한다. 현재 국내 교육에서 모든 경쟁의 종착역은 대학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율고의 자율권, 특히 학생선발권은 현재보다 확대되는 방안이 설립취지에 부합된다고 본다. 단,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수월성과 함께 다양성도 추구해야

우선 자율고의 책무성이다. 자율이란 무제한의 자유나 방종을 뜻하지 않는다. 자율에는 막중한 책임이 수반된다. 학생선발, 교육과정 운영, 재정 등에서의 자율권이 커진다는 점은 자율고의 책임이 그만큼 가중된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자율고는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자율고가 수월성 교육에 기여하는 일은 좋다. 하지만 자율고의 모든 교육프로그램이 오로지 학력 향상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자율고의 존립 목적에 맞지 않다. 수월성 교육은 다양성의 일부분이지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자율고가 천편일률적으로 세칭 일류대학 진학 준비에만 전념함으로써 스스로를 대입학원으로 전락시킨다면 자율고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기대는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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