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김정일 집단, 善意가 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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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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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적 핵개발”이라고 둘러댔다. 1990년대 1차 핵 위기 때는 핵개발 동결의 대가로 대체에너지를 요구해 한국과 미국은 경수로 2기와 매년 중유 50만 t 제공을 약속했다. 2000년대 초 2차 핵 위기 발생으로 경수로 건설이 날아가 버렸을 때도 북은 전력 타령을 했다. 2005년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 남한의 전력을 직접 북에 공급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북이 진짜 전력이 필요해 핵개발을 시도한 것일까. 우리가 경수로를 지어주거나 직접 전력을 공급했다면 북이 핵개발을 포기했을까. 북이 상당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도 밤이면 북한 전역이 암흑천지로 변하는 것만 봐도 전력 생산은 핵개발을 위한 구실일 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의 핵개발 포기와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돈 세례를 퍼부은 그간의 ‘정성’이 허망할 뿐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Northern Limits Line)에 대한 북한의 주장을 들어보면 북의 코앞에 있는 서해 5도와 인근 해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 잘못 같다. 북은 “남의 집 마당에 집주인도 모르게 금을 그어놓고 제 마당이라고 우겨대는 날강도적인 주장”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기 위해 미국이 만들어 놓은 도화선”이라고 강변한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은 한국방위수역(일명 클라크라인)을 설정해 한반도 전 연안을 완전 봉쇄했을 정도로 해군력이 막강했다. 따라서 휴전협상 때 육상과 달리 남북 해양군사력의 현실적 대치를 전제로 한 해상 군사분계선의 설정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관은 휴전협정의 정신을 존중해 휘하의 해군력을 남쪽으로 제한하기 위해 동·서해에서 육상의 군사분계선을 따라 해상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 김영구 전 한국해양대 법대 교수가 저서 ‘한국과 바다의 국제법’에서 설명한 NLL 탄생의 배경이다. 그는 “당시 해군력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북한으로서는 유엔군의 자기 제한적 철수의 결과 군사적 진공으로 된 영역을 반사적으로 통제하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만약 남쪽 해군력의 북상 저지가 아니라 북쪽 해군력의 남하를 일방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NLL이 아니라 SLL(Southern Limits Line)이 돼야 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NLL이 북을 ‘배려’하기 위한 선의(善意)에서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땐 가만히 있다가 NLL이 점차 성가신 존재로 여겨지자 1999년 NLL 훨씬 남쪽을 지나는 자신들만의 해상 군사분계선을 들고 나왔다. 남쪽에 만만한 정부가 들어선 것을 기회로 NLL 무력화에 본격 나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강력히 대응하기보다 NLL을 재협상하거나 양보할 수 있다는 투의 그릇된 신호를 보내 북의 환상을 키웠다. 노무현 정부 때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닌 안보 개념”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북은 자신들이 구상해온 ‘서해 장악’의 환상이 깨질 위기를 맞고 있다. 그 환상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본질이다. 우리는 북이 핵처럼 억지를 부리면 NLL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미망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동영상=대북 쌀지원은 1석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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