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연평도 포격과 김일성의 망령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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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반도 정세를 주시하면서 ‘김일성의 망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체격이나 머리스타일까지 할아버지를 빼닮은 김정은 이야기가 아니다. 천안함 침몰사건을 일으킨 후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하고, 조선노동당대표자회를 열어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하고,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표한 직후 연평도를 포격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을 속여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1960, 70년대에 ‘반제(反帝)민족해방투쟁’ 기치를 내걸고 테러와 군사도발을 통해 ‘남조선혁명’을 이루려 했다. 또 옛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교묘한 ‘자주외교’를 연출했다. 중-소 대립과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는 강대국을 상대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활용해 ‘장사’를 하려 했다. 1980년대에는 미얀마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기 폭파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김일성 사후 약 20년간 북한은 이 같은 ‘혁명 게임’을 삼가왔다. 냉전시대 방패막이가 돼주던 소련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고 급기야 자본주의 국가가 됐다. 중국도 시장경제 도입을 본격화하면서 한국과 국교를 맺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심각한 식량 위기에도 핵무기와 미사일을 독자 개발하는 데 매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선군정치다.

현재 중국이 대국(大國)화의 길을 걸으면서 국제정치는 다시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도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 이 같은 정세를 배경으로 김정일이 새로운 ‘군사도발’을 개시했다면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과연 북한의 새로운 도발을 단지 주요 20개국(G20)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이를 김정은의 후계 작업에 이용하기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할 것인가.

얼마 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발행하는 기관지 조선신보를 흥미롭게 읽었다. ‘임계점에 봉착한 아시아의 화약고’라는 평양발 기사는 연평도 포격을 “1950년에 발발한 조선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정의했다. 이어 “미국과 대결하는 와중에 북한에 핵 억지력이 생겨났다”며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중국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의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을 잘 반영하는 글이다.

사실 지난해 여름 이후 중국 정부는 중국 주변에 지정학적 전략거점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행동으로 옮겨왔다. 리먼브러더스 충격 이후 중국의 경제적 지위가 한층 강화되면서 중국은 ‘세력권 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중국해나 남중국해뿐 아니라 북한도 지정학적 거점이다. 김정일이 이를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천안함 침몰이나 연평도 포격은 중국의 새로운 대외 방침과 관련이 있다. 김정일은 세력권 확대를 지향하는 중국의 적극적 대외방침에 용기를 얻어 이를 교묘히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이 중국의 대국주의 외교를 이용해 중국을 한반도 군사도발에 휩싸이게 한다면 그는 김일성과 같은 전략가 대열에 오른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이 반드시 중국 일변도, 혹은 미국과의 전면 대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변에 미국 연구자를 불러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여전히 미국과의 핵 교섭을 갈망하면서, 제2의 제네바합의를 체결하려 하고 있다. 김정일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양다리 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국의 권력정치를 조종하는 소국의 독재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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