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권희]일본이 다시 인도로 가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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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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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오랫동안 선진국 시장만 바라봤다. 고품질 제품을 높은 가격에 파는 전략이었다. ‘Made in Japan’은 이미지 조사를 했다 하면 대부분 항목에서 1위였다. 일본 광고회사 하쿠호도가 2008년 신흥국에서 벌인 5개국 상품의 이미지 조사에서도 일본 제품의 ‘고품질’ 이미지는 한국 등 경쟁국 제품을 압도했다. 특허 출원 세계 2위에 걸맞은 최고 수준의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납품 중소기업이 많은 것이 큰 힘이다.

정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990년대 중국과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했던 일본 기업 중 일부는 기술과 노하우의 현지 유출을 막기 위해 2000년대 초 일본으로 U턴했다”고 말한다.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도 국제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만은 넘쳐났다.

그런데 요즘은 180도 달라졌다. 가전업체 파나소닉은 리모컨 기능을 빼 가격을 낮춘 에어컨, 전기가 끊겨도 일정 시간 가동하는 냉장고를 인도에 선보였다. 인도는 연중 후텁지근해 에어컨을 항상 켜놓아야 하고 정전사태가 잦다는 데 착안해 개발한 중산층용 모델이다. 소니는 40인치 이상의 액정TV를 주력으로 하면서도 인도 중산층에 맞춰 19인치와 26인치 모델을 별도로 만들었다.

최고의 기술을 잔뜩 집어넣어 최고가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던 일본 메이커들도 급해지니까 신흥시장 중산층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가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일본의 신흥시장 공략은 무난한 편”이라며 “한국의 높은 성과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앞으로의 경쟁이 관심거리”라고 말했다.

일본이 신흥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선진국의 수입이 크게 감소한 2008년 이후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작년 경제백서에서 8억8000만 명에 이르는 아시아 11개 신흥국의 볼륨 존(volume zone·대중소비시장)을 파고들라고 기업에 주문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중국 브라질 인도 등 7개 유망 신흥국의 볼륨 존이 2008년 1억 가구를 약간 넘었지만 2020년 5억 가구 이상으로 팽창할 것으로 본다.

한국은 신흥국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했다. 유럽과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초 개방경제로 전환한 인도에 진출했으나 열악한 비즈니스 환경에 실망해 수 년 만에 철수했다. 이때 빈자리를 치고 들어가 성공신화를 만든 게 한국 기업이다. 삼성 LG 현대자동차가 10년 이상 시장을 다져왔다. 요즘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의 글로벌화 전략을 배우고 따라 한다.

다소 늦었지만 일본 기업이 인도 등 신흥국을 공략하는 의미는 작지 않다. 지난 2년간의 처절한 구조조정 효과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 소니 같은 자동차 및 가전업계는 비용 절감을 위해 몽당연필 재활용도 마다하지 않았고 방만한 생산설비 감축과 비효율적인 연구개발투자 삭감, 인원 감축을 매섭게 추진했다.

이들은 퇴직금 지급 등에 큰돈이 들어간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엔 적자를 봤지만 다음 해엔 적으나마 흑자를 냈다. 내년 5월 상당수 기업은 2010회계연도의 큰 폭 흑자를 즐길 가능성이 높다. 엔고(高) 아래 거둔 흑자라 더 빛이 난다.

한국 기업들은 올해 상반기까지 원화약세의 환율효과를 누리면서 이렇다 할 구조조정 없이 편하게 살다가 원화강세 국면을 맞았다. 일본 기업의 신흥국 진출은 10년 늦었지만 우리 기업은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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