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맑은 칸쿤, 흐린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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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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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1850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세계기상기구(WMO)가 최근 발표한 가운데 ‘죽기 전에 가봐야 할 휴양지’ 명단에 꼭 드는 멕시코 칸쿤에서 제16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6)가 열리고 있다. 카리브 해의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엔 지금 3만여 명의 각국 대표단, 국제기구 및 시민단체(NGO) 관계자가 몰려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켜낼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개막해 이달 10일까지 열리는 총회의 전망을 독일 슈피겔지는 “최소한 (기후가 아니라) 날씨는 좋을 것”이라고 재치 있게 묘사했다.

교토의정서 만료시한은 다가오는데


이명박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등 정상급 지도자만 120여 명이 참석해 ‘지구를 구할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를 받은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것이 작년 이맘때다. 오바마 대통령의 막판 설득으로 극적 타결을 기대했던 회의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끝났다. 140여 개국이 서명한 코펜하겐 합의(Copenhagen Accord)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막연한 내용이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구속력 있는 합의는 없었다.

기대를 모았던 정상급 총회가 그런 식으로 끝나버렸는데 장관급 회의인 칸쿤 총회에서 뭐가 더 나오겠느냐는 회의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주 발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국가가 코펜하겐 합의를 지킨다 해도 이는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막기 위한 조치의 60%에 불과하다고 한다. 코펜하겐 합의를 지킨다는 보장도 없으니 이 합의만으론 다가올 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교토의정서 비준 국가들은 2008년부터 5년간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평균 5.2% 감축하는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 만료시점이 2012년으로 2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총회에서 교토의정서를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협약의 초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2012년 이후엔 각자 자기만 살겠다는 살벌한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만 피하려고 할수록 모두가 늪에 깊숙이 빠지는 것이 인류가 당면한 기후전쟁의 특징이다.

이번에도 협상의 발목을 잡는 것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해묵은 견해차다. 급성장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중국 인도 등은 선진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선진국은 개도국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오바마 대통령의 좁아진 정치적 입지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협조를 받지 못하는 오바마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기준 17% 감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중국을 압박할 수는 없다. 온실가스 감축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유럽연합(EU)도 재정위기로 주도권을 상실해가고 있다. 여러 쟁점 중 온실가스 감축 이행과정을 측정·보고·검증하는 MRV(Measurement, Reporting and Verification)에 대해 미중이 의견차를 좁히고 있다는 게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다.

국가들도 ‘기든스 패러독스’ 빠지나


‘제3의 길’ 주창자인 앤서니 기든스 영국 런던정경대 교수는 최근 저서 ‘기후변화의 정치학’에서 지구온난화를 지구적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때문에 개인이 생활태도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현상을 지적했다. 이것이 ‘기든스의 역설’이다. 거대한 변화를 이뤄내기엔 역부족이라고 느낄 때 개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 대신에 ‘국가’를 넣어도 맥락은 같아진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을 내세워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동안 ‘공유지의 비극’에 빠진 지구호(號)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칸쿤에서 희망의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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