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체벌 금지와 우리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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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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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 초지고 3학년 17반 담임인 강정훈 선생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제자들에게 뭔가 힘이 돼 주고 싶었다. 강 선생님의 반 학생은 모두 44명. 수능 일주일 전부터 한 명 한 명에게 응원 편지를 썼다.

‘수능 잘 봐라’ ‘떨지 말고 침착해라’ 같은 상투적인 내용으로 채우기는 싫었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나 퇴근 후에 책상에 앉아 1년 동안 학생 개개인과 함께 나눈 추억을 곰곰이 떠올렸다.

‘○○야,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던 네가 학기 초에 방에서 컴퓨터를 치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한 해 동안 게임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고생 많았다. 너의 노력이 내일 시험을 통해 결실을 맺기 바란다. 기도할게….’

편지는 색연필과 색종이로 예쁘게 꾸몄다. 쿠키와 초콜릿 등 제자들이 수능 중간에 먹을 간식도 챙겼다. 이렇게 마련한 선물과 편지를 수능 전날 수험표와 함께 제자들에게 나눠줬다.

수능 6일 전인 12일 경기 안양시 성문고 3학년 8반 교실. 스크린에 이 학급 학생들의 1년 생활 모습과 수능장의 생생한 분위기가 담긴 영상물이 상영됐다. 대학생이 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수능 응원 메시지도 나왔다. 학생들은 담임인 이규철 선생님이 준비한 떡볶이와 김밥을 먹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약 1시간 분량의 이 손수제작물(UCC)은 이 선생님이 수험생 제자들을 위해 몇 년에 걸쳐 만든 것. 수년 동안 수능일이면 새벽부터 수험장에 나가 수험생들의 마음가짐과 분위기를 캠코더에 담았다. 수능을 치르는 제자들이 수능일의 긴장감을 간접 경험해 실제 시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북 군산제일고 소명섭 선생님은 2006년부터 매년 가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고 있다. 소 선생님이 평소 운동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입시를 앞둔 제자들에게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였다.

올해는 시간이 없어 준비를 못했지만 지난해까지 소 선생님의 마라톤 등 번호표는 남들과 달랐다. 담임을 맡은 학급의 학생 한 명 한 명의 사진을 우표 크기로 출력한 뒤 옆에 학생이 이번 수능에서 희망하는 점수와 소망을 깨알같이 적어 넣도록 했다. 이를 번호표 대신 등에 붙이고 매년 42.195km를 완주했던 것.

선생님들의 이 같은 사연은 동아이지에듀가 발행하는 국내 유일의 고교생 주간 신문인 ‘P·A·S·S’에 소개된 내용이다. 이 신문의 ‘쌤’(선생님을 가리키는 학생들의 용어) 코너에는 매주 전국의 훌륭한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고교생 기자들이 직접 사진을 찍고 기사로 쓴 것이다.

요즘 교실이 ‘위기’라고 한다. 체벌 전면금지 조치 이후 나타난 부작용 때문이다. 23일에는 서울 경기지역 교사 100여 명이 모여 이 문제를 놓고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좋은 말로 선도할 수 있는 학생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벌점을 주고 학교생활기록부에 남기는 방법도 그럴듯하지만 통하지 않는 아이가 수두룩할 것이다.

하지만 체벌 없는 학교는 결국 우리 교육이 가야 할 방향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해결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위에 소개된 세 분의 선생님을 포함한 많은 선생님들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계실 것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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