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서영아]“공짜 좋아하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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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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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여 만에 귀국해 온몸으로 느낀 한국의 특징 중 하나는 공짜가 넘쳐난다는 점이다. 어딜 가건 사은품이나 덤이 경쟁적으로 제공된다. 거리에서 나눠주는 샘플도 많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 어디 있으랴마는, 늘 의문은 들었다. 대체 이것들은 어디서 흘러오는 재화일까.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른다는 현대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프리 마케팅(Free Marketing)도 하나의 상술이긴 하지만, 공짜는 허울만 그럴듯할 뿐 실제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4개월 노예계약에 묶인 ‘공짜’ 휴대전화가 대표적인 예다.

최근 1인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씨의 고독한 죽음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디 음악인들의 배고픈 현실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음악 시장이 CD에서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재편되면서 수익 분배나 판매 방식이 음악인들에게 불리해졌고, 특히 대형 음원 사이트들이 경쟁적으로 ‘월 1만 원 무제한 스트리밍’ 등의 묶음상품을 내놓으면서 음악인의 목을 조르는 현실이 드러났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논쟁은 음악인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으로 번지더니 제값 치르지 않고 음악을 즐기는 소비자 행태에 대한 자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논쟁을 지켜보며 자꾸 공짜의 늪에 빠진 뉴스 시장이 오버랩돼 떠올랐다. 미디어콘텐츠 분야는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 등 통신기술 발달로 음악시장만큼이나 유통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음악이건 뉴스건 콘텐츠 생산자는 배고파지고 중간 유통업자들이 살찌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인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장만하고 골방에서 굶으면서 만들어낸 음악으로 돈은 음원업자들이 번다.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수백 명의 기자가 취재하고 기사 쓰고 게이트키핑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정작 성장을 거듭하는 곳은 이런 뉴스들을 싼값에 긁어모아 검색기능을 붙여 전달하는 거대 사이트들이다.

인터넷에는 뉴스만 있는 건 아니라고? 미국사례이긴 하지만 지난해 미국 퓨리서치사가 볼티모어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지역에서 유통되는 53개 매체를 1주일간 분석한 결과, 원본 뉴스의 96%를 3대 전통미디어(신문 61%, TV 28%, 라디오 7%)가 공급하고 있었다. 온라인 전용 뉴스매체나 블로그, 트위터 등 소위 뉴미디어가 새로 제공한 뉴스는 4%에 그쳤다. 또 생산된 정보의 83%는 다른 매체를 통해 반복됐다. 결국 신문 등 올드미디어는 인터넷에 독자와 광고주를 빼앗기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작 인터넷의 내용을 풍요롭게 하는 정보 콘텐츠 대부분을 제공하고 있다는 역설적 현실을 조사결과는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콘텐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뉴스건 콘텐츠건 공짜가 대세가 돼버린 요즘 분위기지만, 공짜에만 매달리다가는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저질 정보의 홍수 속을 헤매고, 보기 싫은 선정 광고를 봐주며 제2, 제3의 ‘달빛요정’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뭔가를 애써 생산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헐값에 후려쳐지고, 그래서 그 생산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사회에 어떤 미래가 있을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서영아 인터넷뉴스팀장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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