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태훈]검찰이 자초한 ‘민간인 사찰 부실수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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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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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 청와대 행정관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게 ‘대포폰’을 건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민간인 불법사찰 부실 수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는 다소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선을 다해 수사했건만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청와대 윗선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것인데, 검찰이 의도적으로 청와대를 감싼 듯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심이 가도 증거가 없으면 관련자를 법정에 세우기 어렵다는 점에서 검찰의 반박과 해명은 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불법사찰 수사 과정을 되짚어보면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수사 의지가 철저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검찰이 수사 착수 직후 공직윤리지원관실을 곧바로 압수수색하지 않은 대목이 꼽힌다. 7월 5일 총리실에서 자체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검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나흘 뒤인 9일에야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수사팀 구성과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위한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압수수색을 일부러 늦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5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핵심 증거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내용이 모두 삭제돼 버렸다.

결정적 증거가 이미 사라져 버린 탓에 수사팀은 수사팀대로 고생만 잔뜩 하고 기대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미완의 수사가 되고 말았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사건 관련자들이 오리발을 내밀고 묵비권을 행사해도 입을 열게 할 뾰족한 방도가 없었고 결국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윗선’ 의혹은 미궁에 빠진 채 수사가 마무리됐다.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인멸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장모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건넸던 청와대 최모 행정관을 검찰청 바깥의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한 것도 충분히 구설수에 오를 만한 일이다. 검찰은 “빨리 조사는 해야겠는데 참고인이라 강제 구인할 수 없어 본인이 희망한 외부 조사를 택했다”고 해명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청와대를 의식한 ‘특별 배려’가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청와대 쪽도 책임이 있다. 일반 공무원도 아닌 청와대 직원이라면 일반인보다 더욱 엄정하게 조사를 받도록 협조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평소 검찰조직의 존재 이유에 대해 ‘거악(巨惡) 척결’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에서도 이런 검찰의 대명제가 철저히 적용됐다면 뒤늦은 ‘부실 수사’ 논란에 휘말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태훈 사회부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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