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7·30 조치와 고교야구 주말리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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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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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우리나라 교육정책에 불만이 많았던 백성이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정부와 국회는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됐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란 데서 난데없이 7·30조치를 발표했다. 대학 본고사 폐지와 내신제 도입, 과외 금지로 대표되는 ‘학교 교육 정상화’ 방안이었다. 과열 경쟁을 피하고, 학교 수업을 충실히 받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게다가 졸업 정원제라고 해서 입학 정원을 두 배 가까이 늘린다니 베이비붐 세대인 학생들도, 재정에 큰 도움이 될 대학들도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기자는 왜 그리 못마땅했던지. ‘본고사를 없애 한바탕 정면 승부를 못하게 하다니. 내신 성적만 좋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닌데.’ 하늘 아래 무서울 게 없던 시절이었다. 여담이지만 결국 기자의 고교 성적은 7·30 이전과 이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게 됐다. 그래도 운은 억세게 좋았던지 마침 이듬해 학력고사가 무척이나 어렵게 나온 덕분에 감점 15점(내신 6등급)의 핸디캡을 안고도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배정받을 수 있는 곳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선 수없이 쌍권총을 찬 탓에 ‘수학능력 부족’이란 낙인이 찍힌 채 잠시 떠나 있긴 했어도 나중에 졸업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말이 길어진 것은 26일 발표된 정부의 고교야구 주말리그제 추진안을 보면서 문득 7·30조치가 연상된 때문이다. 주말리그제는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다. 경기는 주말이나 방학에 하고, 훈련은 방과 후에 한다는 게 골자다. 취지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하향 평준화란 점에서 어찌 그리 닮았는지. 야구선수는 좀 더 몸이 여물어야 빛을 발하는 축구나 농구와는 달리 고등학생이면 준프로선수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한다면 이미 실패했다는 뜻이다. 고교 선수라면 야구로 한번 끝장 승부를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주말리그제는 예비 프로인 고교보다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선수에게 꼭 필요한 제도다.

사실 ‘공부하는 운동선수’라는 대목에서도 반감이 생긴다. 일반 학생은 운동을 못해도 별 문제가 아니지만, 운동선수는 공부를 못하면 마치 큰일 난다는 뜻으로 들린다. 확대 해석하면 운동선수는 모두 바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기자가 만나본 운동선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올해 초 국회에서 발의됐던 학교체육법도 99%의 공부 기계보다는 1%인 운동 기계를 개조하는 데 중점을 뒀다.

대회 운영방안도 주말과 방학에 경기를 집중적으로 한다는 것만 다를 뿐 기존의 지역 예선을 약간 확대하고 전국대회를 치르는 종전 방식에서 벗어난 게 없다. 급조를 하는 바람에 현장의 목소리는 제대로 담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결국 이 때문에 1947년 시작돼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동아일보)를 비롯해 청룡기(1953년 조선일보가 자유신문으로부터 인수), 대통령배(중앙일보·1967년), 봉황기(한국일보·1971년) 대회가 중단되거나 문패를 내릴 위기에 처했다.

팬이 없으면 야구도 없다. 주말리그제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라운드에 팬들을 오게 하는 일이다. 다행히 정부와 대한야구협회는 기존의 명망 있는 대회 명칭을 앞으로 시행할 지역 리그와 전국 왕중왕 대회 때 그대로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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