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산가족 상봉은 흥정 대상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올해 90세인 김정수 할머니는 다음 달 3일 금강산에서 만나게 될 딸(67)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김 할머니는 평안북도 의주군에 살다 6·25전쟁 직전에 당시 아홉 살과 여섯 살이던 아들 2명만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일곱 살배기 딸도 데려오려 했으나 친정아버지가 “힘들어서 못 간다”며 만류해 눈물을 머금고 친정에 맡겼다. 91세 이승용 할아버지도 1·4후퇴 때 북에 두고 온 두 살 아래 부인과 아들딸을 만나게 돼 “꿈만 같다”며 들떠있다.

30일 시작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꿈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혈육을 만나는 이산가족의 사연은 하나같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60년 전 생이별한 가족과 재회하는 기쁨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8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 상봉신청자 가운데 이번에 혈육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된 사람은 100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신청자의 77%는 70대 이상 고령이다. 안타깝게도 올 들어 이산의 한(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고령 상봉신청자가 한 달에 259명꼴이나 된다. 이산가족의 비극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인도주의를 말하는 것은 낯 뜨거운 위선이다.

어제 개성 자남산 여관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의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남북은 현격한 견해차를 보이다 11월 25일 다시 적십자회담을 논의하기로 합의하는 데 그쳤다. 북측은 차기 회담을 문산에서 열자는 우리 측 제안에도 답변을 주지 않았다.

북한은 예상대로 이산가족 상봉을 대규모 쌀 지원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얻어내기 위한 앵벌이 수단으로 삼았다. 북측은 고작 1년에 3, 4차례 100명 규모의 이산가족 상봉을 제시하며 대가로 쌀 50만 t과 비료 30만 t 지원을 요구했다. 올 9월 갑작스럽게 이산가족 추석 상봉을 제안한 북의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북의 목표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쌀 비료 그리고 금강산관광 재개다.

우리 정부는 매월 남북 100가족 상봉 정례화, 상봉 이산가족의 재상봉, 매월 5000명의 생사 주소 확인 같은 과감한 제안을 했다. 다음 번 회담에서 일부라도 성사시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대규모 대북(對北) 지원과 금강산관광 재개와 연계하는 북의 흥정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