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석재]‘우주안보’ 아직 낯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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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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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우리나라를 주제로 SF를 구상해본 적이 있는데 시작 부분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적성국이 당연히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부터 몇 개 추락시키고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적성국은 반드시 우리의 주력인 고성능 미제 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카드를 먼저 던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8월 서해안 지역에서 일어난 GPS의 전파 수신 장애를 절대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이 국회의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돼 정말 다행이다. 만일 적성국의 교란에 따른 결과라면 무장공비 침투와 똑같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이제는 우주안보라는 말이 거론돼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점점 더 심해질 GPS 등 우주측지(測地·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치 측정)와 관련된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 미리 대비하는 사람이 당장 성과를 내는 사람보다 점수를 따지 못하는 사례를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바둑에서 판세와 상관없이 당장 돌 몇 개를 때려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진다. 이런 것을 바로잡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필자가 겪었던 경험을 하나 예로 들겠다. 일부 휴대전화에 2006년 설날이 양력 1월 29일이 아니라 30일로 틀리게 표기된 적이 있었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이 사실을 중대하게 여기고 2005년 12월부터 적극 홍보해 혼란을 최소화했다. 그렇게 안 했더라면 휴대전화 날짜를 근거로 여행을 예약한 사람의 연이은 고소에 해당 통신사가 큰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처럼 임의로 달력을 만들어 배포해도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다수의 국민이 음력으로 생일을 쇠는 상황에서 지난 정부들이 음력을 버리려고 여러 차례 시도한 일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 여파로 개천절만 괜히 음력 10월 3일에서 양력 10월 3일로 옮겨지게 됐을 뿐이다. 올해 국회에서 천문법을 제정해 이런 일을 바로잡은 것은 나라의 근본을 세운 쾌거였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13년 태양 활동 극대기에 따른 우주환경 재앙을 계속 경고하고 있다. 이 문제도 거대한 태풍이 다가오는 일과 같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피해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우주측지와 우주환경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주감시 분야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반도 상공을 통과하는 첩보위성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한다. 이 일 역시 한반도 영공에 들어오는 적기와 똑같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최근 공군도 우주측지 우주환경 우주감시와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우주안보 체제 구축을 위해 한국천문연구원과 함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이런 형태의 민군 협력은 국방비를 절감하고 효율을 극대화해 궁극적으로 국방경영을 안정시킨다.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국민이 한다와 같은 국방 격언과도 일치한다. 공군의 이런 노력을 우주라는 말만 듣고 허황된 일로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공군은 독립국가가 필요한 최소한의 우주안보 체제를 갖추겠다는 것이지 당장 우주선을 타고 레이저를 발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 ‘노잉’은 우리에게 우주환경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줬다. 장면이 너무 실감나 2013년 종말론자에게 악용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천문학자로 나오는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칠판에 쓴 수식도 태양풍을 기술하는 ‘진짜 방정식’이었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동아 논평 : 디지털 통한 北의 도발 막아야
▲2010년 10월6일 동아뉴스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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