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원高충격’ 못 이기는 기업 쓰러질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국내 생산물량의 55%를 수출하는 현대자동차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2000억 원의 손해를 본다. LG전자는 국내생산 의존도가 높은 에어컨 세탁기 같은 백색가전에 원화 강세가 미칠 타격을 우려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 결과 기업인 405명 중 30%가 2011년 한국 경제의 최대 위기요인으로 ‘환율 변동 폭 확대’를 꼽았다.

어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16원대로 하락(원화가치 상승)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내년에 원화 환율이 달러당 1050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의장국이자 최근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시장결정적 환율제도 이행’ 합의를 이끌어낸 한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기도 쉽지 않다.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수출의 비중이 43%나 된다. 원화 강세는 수입 물가를 떨어뜨리는 순기능도 있지만 기업 채산성 악화, 경제성장률 둔화, 국제수지 악화 같은 부작용이 더 많다.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은 1.1%포인트, 수출증가율은 2.1%포인트 낮아진다. 대기업은 환율예측과 환헤지로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중소기업 중에는 ‘원고(高) 충격’ 때문에 도산하는 곳이 나올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800원대에서도 수출 경쟁력을 가졌던 우리 기업들이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1100원대만 무너지면 비명을 지른다. 임금과 땅값 등 원가가 크게 높아졌다고 하지만 ‘원저(低) 의존 체질’을 못 벗어나고 있다.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전 달러당 260엔대에서 80엔대 초반까지 엔화 환율이 급락한 ‘엔고 행진’ 속에서도 상당수 일본기업은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

제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업의 경영혁신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환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해외진출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국내 산업 공동화(空洞化)와 일자리의 해외 유출을 부추길 우려도 없지 않다. 노조가 1인당 생산성 향상과 노사 협조로 회사의 원가절감 노력에 동참한다면 결국 근로자에게 도움이 된다. 한국의 교역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커진 점을 감안해 정부는 환율정책의 타깃을 원-달러 일변도에서 원-엔, 원-위안으로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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