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범]‘슈퍼스타K’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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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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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0cm가 안 되면 ‘루저’라고 말하고, 학력과 경력을 가전제품의 기능 소개하듯 ‘스펙’이라고 표현하는 게 요즘 세태다. 이런 현실에서 163cm의 단신, 중학교 졸업의 학력, 환풍기 수리공이 직업이라면 솔직히 남에게 자신의 가치와 재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지난 금요일 늦은 밤, 우리는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25세의 젊은이가 뜨거운 갈채와 눈물 속에 스타로 우뚝 서는 현장을 봤다. ‘슈퍼스타K’ 시즌 2(이하 ‘슈퍼스타K’), 일명 ‘슈스케’로 불리던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 이야기다.

이제껏 ‘방송의 마이너리그’라고 여겨졌던 케이블TV의 이 프로그램에 쏠린 사회적 관심과 대중문화 전반에 일으킨 이 프로그램의 파장은 지상파보다 훨씬 크고 강했다.

‘슈퍼스타K’를 보지 않거나 장재인 존 박 허각 강승윤 김그림 등 본선 진출자 ‘톱11’을 모르면 친구들과의 대화가 어렵다는 말이 나왔고, 공연계에서는 ‘슈퍼스타K’가 방송되는 금요일에는 티켓 예매율이 뚝 떨어진다는 푸념도 등장했다. 실제로 22일 방송한 마지막 회는 18.1%(AGB닐슨 집계·Mnet 18.0%+KM 0.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면 대성공, 10%면 지상파 시청률 40%에 버금간다’는 케이블TV 여건을 고려할 때 엄청난 성적이다.

어떤 점이 사람들을 이렇게 빠지게 만들었을까. “우리 국민은 참 콘테스트를 좋아한다”는 심사위원 윤종신의 말처럼 공개경쟁, 매회 탈락자가 생기는 서바이벌 방식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단지 치열한 경쟁 때문이라고 보기엔 뭔가 허전하다.

그동안 우리는 오랜 시간 소속사에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스타만 보는 데 익숙했다. 반면에 ‘슈퍼스타K’의 주인공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대로였다. 시청자는 회를 거듭하면서 출연자들이 한 명의 음악인으로 조금씩 모양을 갖춰 나가는 과정에 빠져들었다.

특히 출연자마다 다른 색깔로 살아온 인생 사연들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더욱 극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 결과 경쟁의 성공과 실패를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마음 졸이고 슬퍼했다. 이런 몰입은 ‘나는 부른다, 너는 들어라’ 식의 일방통행식 구성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또한 ‘슈퍼스타K’의 성공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규모의 경제’가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슈퍼스타K’는 케이블TV와 지상파의 기존 예능 프로그램과 속된 말로 사이즈가 달랐다.

1년여의 준비 기간, 134만 명이 넘는 오디션 참가자. 이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만 60분짜리 테이프로 1만 개에 달했다. 이승철 엄정화 등 몸값 비싼 스타들이 매주 생방송에 나왔다. 본선 진출자의 숙소가 수십억 원짜리 주택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슈퍼스타K’는 CJ미디어와 엠넷미디어를 통해 여러 채널을 거느린 미디어계의 강자 CJ그룹의 야심작이다. 정해진 예산과 한정된 인력의 틀에서 제작하던 지상파의 관행을 비웃듯 제작 기간, 인력 투입, 물량 지원에서 아낌없이 투자하는 공격적인 제작 행태를 보였다.

그래서 ‘슈퍼스타K’의 성공을 두고 일부 관계자는 지상파에서 케이블TV로 방송의 중심이 이동하는 ‘파워 시프트가 시작됐다’는 조금 성급한 전망까지 한다.

공교롭게도 MBC는 11월부터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을 방송한다. 시사프로그램 ‘W’를 종영하고, ‘케이블 따라하기’란 평가를 감수하며 내린 결정이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일으킨 변화, 2010년 가을 ‘슈퍼스타K’란 프로그램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다.

김재범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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