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우리 시대의 ‘실학 마인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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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19세기는 1800년 정조의 승하와 그 이듬해 신유사옥으로 막을 열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으로 풍요롭고 강력한 나라를 꿈꾸던 실학파는 된서리를 맞았다. 19세기 전반은 서구 열강이 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격변의 시대에 조선은 관념론과 명분론이 지배하는 ‘닫힌 나라’로 뒷걸음질쳤고 자주적 근대화의 기회를 잃었다.

실학자들의 주장은 200년 이상이 흐른 지금 읽어봐도 가슴에 와 닿는다. 박제가는 해외통상을 위한 항로를 개발하고 양반들을 운송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수학을 ‘잡학’으로 멸시하던 시대에 정약용은 “100가지 기술의 교묘함은 모두 그 근본이 수리(數理)에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이익은 “무(武)를 천시하는 것은 화살이 밖에서 안으로 향해 날아올 때 붓으로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라며 무반 경시풍조를 개탄했다.

조선 사상계를 지배한 주자학자들은 부국강병의 길을 패도(覇道)로 깎아내리고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왕도(王道)만 강조했다. 현실세계보다 정신세계를 중시할 수도 있지만 주자학 외의 모든 학문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 잘못이었다. 재일(在日) 사학자 강재언 박사는 저서 ‘선비의 나라 한국유학 2천년’에서 “부국강병의 길이 인의를 설교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성공과 실패가 눈에 보이므로 추상적 말로 얼버무릴 수도 없다”고 썼다.

동아시아가 지구촌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중국은 이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의 연간 군사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의 약 2배에 이른다. 일본명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일본과의 분쟁에서처럼 경제를 외교보복 수단으로 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일본은 ‘센카쿠 쇼크’를 1971년 닉슨 쇼크(미중 국교정상화 및 달러와 금의 교환 정지)보다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며 칼을 가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중국이 대일 경제보복에 동원한 희토류의 수입 다변화를 위해 몽골과 손을 잡았다.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주필은 며칠 전 칼럼에서 “중국이 이런 행동을 지속한다면 일본인들은 중국과 길고 긴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중국 일본이 경제국익 극대화를 위해 벌이는 환율 전쟁의 주요 전장(戰場)도 동북아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 정세와 비교할 때 우리는 너무 안이하다. 대통령이 ‘공정사회’라는 말을 꺼내자 정부 부처들이 내놓는 정책도 공정 일색이다. 듣기 좋은 노래도 너무 자주 들으면 지겹다. 이런 분위기라면 자칫 조선시대 예송논쟁이나 이기(理氣)논쟁 비슷하게 흐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정의니, 공정이니 하는 말은 관점에 따라 해석이 천양지차다.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한 중국이 한국과 갈등이 생겼을 때 경제보복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 너무 순진하다. 정부나 기업이 이런 사태에 제대로 대비하는 움직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국정과 기업경영에 이런 식의 ‘구멍’이 얼마나 될까.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는 언제 어느 칼에 맞을지 알 수 없다. 과학적 인식과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논리, 바깥세상의 흐름을 신속히 파악하는 정보력, 국민의 삶과 국가의 번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정책이 우리 시대의 ‘실학 마인드’라고 나는 믿는다. 시대는 달라도 실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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