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폭주하는 의료분쟁 상담… 관련법은 국회서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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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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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피해를 빨리 구제받는 길이 막혀 있으니 상담이 폭주하는 겁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상담콜센터(국번 없이 1372번) 직원 중 의료분쟁 상담원들은 요즘 업무량이 부쩍 늘었다. 의료분쟁 상담이 지난해 1∼8월 1만235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1만7114건으로 70%가량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금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 상담 창구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소보원 등 두 곳이다. 그런데 요즘 상담이 폭주하는 쪽은 소보원이다. 피해구제 신청서 접수 통계를 봐도 2008년 공단 772건, 소보원 603건으로 공단이 앞서 있었으나 지난해부터 소보원 쪽이 7 대 1 비율로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의료분쟁 상담이 소보원으로 쏠리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환자나 가족들을 만나보면 거의 비슷한 대답을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기관이나 의사 편을 들거나 신속한 해결책을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에 발길을 돌린다.”

실제로 지난해 공단에 구제신청서를 낸 피해자 182명 중 57명은 “입증 곤란 또는 의사 책임 규명 곤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불복한 피해자 22명이 민형사 소송을 냈지만, 막강한 의료기관과 의사들을 상대로 최소 1년 이상 장기 소송전을 벌여야 했다.

피해자들의 소리를 듣는 소보원 상담사들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한 상담사는 “올 2월 소비자상담센터를 개설한 뒤부터 상담 신청이 마치 봇물 터진 듯 쏟아지지만 소보원도 마지막 구제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면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고 전했다.

의료사고 피해환자들의 구제절차는 지난해 6월 국회에 상정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의료분쟁조정법안)’에 들어 있다. 신속한 조정 제도와 손해배상금 지불제도가 이 법안에 마련됐지만 1년 3개월째 국회에 계류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의사나 환자 어느 한쪽에 두지 않고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 대표의 이해관계가 아직 조정되지 않아 법안 통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9월 정기국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법안이 의료분쟁조정법”이라고 말했다.

분쟁해결 기관이 아닌 소보원으로 민원이 몰리는 건 그만큼 답답한 상황의 환자가 많다는 뜻이다. 의료분쟁 상담을 접수한 소보원이 법률 절차에 따라 분쟁조정 기관을 소개하는 날이 앞당겨지길 바란다.

정위용 교육복지부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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