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형주]‘아리랑’ 부를 때마다 속으로 울었답니다

  • Array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로스앤젤레스(LA)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공연장인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광복 65주년 기념 음악제에 초청되어 LA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공연을 하였다.

공연일이 8월 15일 광복절이 아닌 8월 14일인 이유는 LA가 대략 우리보다 하루 정도 느리기 때문이란다. 이 사연을 듣게 된 나는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아마 이 글을 보는 분도 그러리라 짐작된다. 여하튼 그날 나는 늘 그랬듯이 오페라 아리아와 영화음악, 뮤지컬 노래와 함께 한국가곡을 불렀다. 특히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한국민요 ‘아리랑’을 불렀는데 공연을 보러 온 공연장의 많은 한인 관객이 하나둘 눈시울을 붉히며 다 같이 따라 불러 주었다.

이런 광경을 여러 번 보아왔던지라 덤덤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반복하는 구절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객석에 있던 한인 가족이 눈에 들어왔는데 나이 지긋하신 신사가 양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훔치셨다.

그 옆에는 내 나이 정도로 보이는, 딸 같은 여자 분이 있었는데 그녀는 노신사를 가슴 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쪽 옆에 있던 부인 같아 보이는 분은 우는 노신사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줬다. 노래하며 이 광경을 본 나는 반복되는 후렴 구절부터 울컥하기 시작했다. 노래를 계속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안정된 목소리로 무사히 노래를 끝냈다.

한국인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울컥

나는 이제 경력이 오래되어 무대에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베테랑이다, 이런 식의 자랑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12년간을 무대에 선 나도 아직까지 한인 분들 앞에서 한국가곡와 한국민요, 특히 ‘아리랑’을 부르는 일은 힘들다.

해마다 해외에서의 독창회나 협연 공연에서 나는 한국가곡과 한국동요를 불렀다. 예전에 런던 독창회 때는 마지막 앙코르곡으로 애국가도 불렀다. 하지만 ‘아리랑’은 부를 때마다 힘들다. 이 노래를 부를 때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이상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하고 목이 메어 노래 부르기가 힘들다.

나는 남자치고는 감수성이 예민한 편이라 공연에서 슬픈 노래를 부를 때면 눈물을 비칠 때가 간혹 있다. 한 번 그런 일이 있은 이후에는 같은 곡이나 비슷한 노래를 부를 때 끝까지 집중해서 부르기 때문에 또다시 눈물을 보인다거나 음정이 불안해진다거나 하는 등의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는다.

하지만 ‘아리랑’은 아직까지 예외다. 요즘도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힘들다. ‘왜 아리랑을 부를 때만 유독 그럴까’ 하고 고민할 때마다 떠오른 생각은 늘 하나였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애국가보다 훨씬 이전부터 오랜 세월 한민족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와 함께해온 노래이기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애틋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해외 독창회 때 있었던 일이다. 멋진 군복을 입고 가슴에 여러 개의 빛나는 훈장을 단 백인 신사가 독창회가 끝난 후 공연장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사인을 요청하며 했던 말과 행동을 잊을 수가 없다.

자신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사람인데 예전에 한국에서 들었던 ‘아리랑’을 오늘 다시 듣게 됐다고 했다. 그때의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었고 자신이 참전했던 나라가 이제는 당신과 같은 훌륭한 음악가를 배출하는 나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기쁘다면서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아리랑’ 가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공연 때 따라 불렀다는 말을 했다. 내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못 믿겠느냐고 말하면서 약간 어눌하지만 비교적 명확하게 ‘아리랑’을 불러주었다. 그때 느꼈던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지금도 소중히 간직한다. 이것 말고도 내게는 ‘아리랑’과 관련한 감동적인 일화가 꽤 있다.

가슴 깊은 곳, 恨의 울림이란…

‘아리랑’은 노래 자체가 워낙 슬프기도 하지만 가슴 찡한 사연을 많이 안겨준 노래이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올해도 여지없이 나의 ‘아리랑’ 징크스는 치유되지 않았지만 나는 행복하기만 하다.

왜냐면 아직도 내 가슴속에 열정적이고도 자기감정에 솔직한 한국인의 순수한 피가 끓고 있어서다. 또 한국인 고유의 정서인 ‘한(恨)’을 자연스레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어서다.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Identity)을 일깨워주는 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의 광복 65주년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한다. 브라보 코리아!(Bravo Korea!)

임형주 팝페라테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