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해안포 빗발칠 때 우리 레이더는 먹통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6일 03시 00분


북한이 9일 서해의 백령도 연평도 인근 해상으로 발사한 해안포 110여 발 가운데 10여 발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 떨어졌는데도 우리 군(軍)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포탄이 NLL을 넘었는지에 대한 판단조차 우왕좌왕했다. 천안함 폭침이 깨우쳐준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5개월도 안 돼 잊고 만 것이다. 우리 군의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백령도에 배치한 대(對)포병 레이더가 북한의 해안포 도발 당시 고장 나 있던 사실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국회 답변에서 새로 드러났다. 이 레이더는 올해 1월 북한이 해안포 400여 발을 발사한 이후 해안포 감시용으로 설치한 것이다. 북한 해안포 진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최북단 접적(接敵)지역에서 이런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국민은 누구를 믿고 발을 뻗고 잠을 자야 할지 모르겠다.

대포병 레이더는 날아오는 포탄을 포착해 발사지점을 계산함으로써 정확한 대응사격을 도와주는 장비다. 이 장비는 측정 오차 때문에 여러 대를 동시에 가동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군은 백령도에 단 한 대만 배치했다. 그것마저 전원장치의 고장으로 움직이지 않는 무용지물 상태였다. 이 때문에 초병들이 물기둥을 보고 포탄이 떨어진 위치를 알아내 10여 발이 NLL을 넘어왔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합참은 근거가 미약하다며 보고를 무시해버렸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피해가 없으면 대응사격을 하지 않는다는 교전수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던 점도 실망스럽다. 김 장관은 “이달 북한의 해안포 발사 이후 북한 포탄이 NLL을 넘으면 즉각 2, 3배 화력(火力)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으로 교전수칙을 바꿨다”고 밝혔다. 이 말은 믿을 수 있을까. 우리 군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포함한 모든 위험에 대응할 종합대책을 갖고 있다”고 강조해 왔지만 헛말임이 드러났다.

아무리 여러 번 전군(全軍)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지시를 내리고 수시로 군사훈련을 갖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처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은 특히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와 수도권 방어에 필수다. 북한이 서해 5도를 집중 포격해 기습점령을 노리거나 휴전선 일대의 사거리 50∼60km 장사정포로 서울 공격을 시도할 경우 신속한 대응을 해야 치명적 결과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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