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王씨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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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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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 대표는 1998년 김대중(DJ) 정부 출범 직후 초대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으로 출발해 문화관광부 장관, 정책기획수석, 정책특보, 비서실장 등 핵심 요직을 거쳤다. DJ의 변함없는 신임에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내내 화려한 길을 걸었으나 견제와 질시도 끊이지 않았다. 정책기획수석 시절엔 청와대 실세라는 의미에서 ‘왕(王)수석’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 DJ 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임명됐을 때는 “대통령 주변에 박지원밖에 인물이 없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영삼(YS) 정부 시절 이원종 정무수석도 ‘왕수석’ 소리를 들었다. YS는 차관급인 다른 수석들과 달리 이 수석을 장관급으로 예우할 만큼 각별한 신임을 표시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초대 민정수석을 거쳐 시민사회수석, 다시 민정수석, 비서실장까지 지낸 문재인 변호사가 ‘왕수석’으로 통했다. 실세들에 대한 외부의 비판이 나올 때마다 역대 대통령들은 “우리 정부엔 실세가 없다”며 반론을 폈지만 실세는 여전히 실세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언론에 왕(王)차관 얘기가 나오더라. 내가 임명한 사람 중에 왕씨는 없는데…”라고 말했다.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을 두고 일부 언론이 ‘왕차관’이라고 호칭한 데 대한 언급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실세 차관을 그렇게 부르는가 보던데 나에게는 그런 실세는 없다.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실세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초인 2008년 4월 2일 “청와대에는 실세가 없다. 누구든 열심히 뛰어주는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다”면서 몇몇 비서관의 이름을 거명했다. 박 전 비서관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DJ의 왕수석 격이었던 민주당 박지원 비대위 대표가 어제 이 대통령의 ‘왕차관 없다’는 말에 발끈해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국민을 희롱하지 말라”고 직공(直攻)했다. 왕수석은 왕차관을 알아보는 법인가. MB 정부의 ‘왕차관’은 친이(친이명박)계 소장파 의원들에 의해 ‘권력 사유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가 겸허하게 몸을 낮추고 일로 승부해야만 ‘왕씨’ 호칭을 뗄 수 있을 것이다.

박 성 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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