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대실]‘유전자’ ‘DNA’에 씌워진 안타까운 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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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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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의 유전자(DNA)를 영구 보관해 미제사건의 해결에 활용하겠다고 경찰청이 최근 발표했다. DNA가 현대사회의 만능 해결사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표를 보면서 DNA를 다루는 현장과학자로서 여러 생각이 교차됐다. 국내에서는 DNA가 대접을 잘 못 받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흉악범을 검거하는 수단으로 DNA를 활용하는 방안에는 거부반응이 없지만 인류의 생명을 지키고 미래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는 수단으로선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다.

DNA는 지난 150년간 수많은 과학자가 유전현상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유전물질이다. 지구상 모든 생물의 공통 유전물질이라서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정보를 통해 인류의 건강과 바이오산업을 그릴 수 있다. 근년에는 기술선진국의 연구기관이 생물 수천 종의 DNA 정보를 대대적으로 규명했다. 바이오산업계는 이 정보를 활용해 의약품 개발과 식량 증산, 석유에너지의 대체산업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EPO(etythropoietin)라는 빈혈치료체나 성장호르몬 그리고 인슐린이 DNA 재조합 기술로 만들어져 수많은 환자를 질병에서 구하고 있다. 유전공학이 없었다면 호르몬과 같은 약제나 효소를 만들지 못해 수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신음할 것이다. DNA는 인류에게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주는 고마운 생명의 정보인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국내 분위기는 반대로 가고 있다. 유전공학 제품을 독극물처럼 취급해 특별 안전성 검사까지 요구하거나 시장에서 격리시켜 일반인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가 DNA를 멀리할수록 피해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 예로 국내에서 1조 원 정도의 시장을 가진 식품의 효소가공 산업이 전멸했다. 유전공학으로 제조한 효소의 국내 안전성 검사기준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자금력과 시간을 가진 다국적 기업이 파고들어 식품가공소재 시장을 완전히 점령했다.

유럽은 식품가공효소를 생산수단으로 보고 안전성 검사를 제외시켰으나 국내는 식품첨가물로 구분해 의약품 수준의 엄격한 검사를 받게 했다. 결과적으로 영세한 국내 바이오기업은 과도한 안전성 검사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 효소산업은 식품가공 산업에 그치지 않는다. 의약품 개발과 바이오센서, 바이오전지 그리고 정밀 화학산업의 대체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기술선진국은 바이오매스로부터 바이오에너지와 약제, 그리고 기능성 소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DNA의 선용에 회의적이다. DNA에서 출발한 유전공학의 산물을 선의로 받아들일 자세보다는 부정적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말이다. 유전공학으로 생산한 효소나 농산물(GMO)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지고 보면 잉여 쌀로부터 고부가가치의 산물을 만드는 문제도 이로 인해 막혔다. DNA의 오용을 방치하자는 게 아니라 선용할 방안까지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흉악범 DNA의 영구 보관에 앞서 국가유공자나 유명인사의 DNA를 우선적으로 보존하고 그들의 유전정보를 생명과학이나 의학 연구에 활용하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뜻과 이름을 오래 기릴 수 있고 더 나아가 과학 발전에 크게 보탬이 될 수 있다. 미국 의학계가 아인슈타인의 두뇌와 DNA 시료를 연구 목적으로 보존하는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조상의 DNA나 정보를 영구히 보존하는 일도 의미 있다. 시간이 지나도 선조의 모습은 DNA에 그대로 남는다.

이대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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