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국민은 지긋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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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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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일, 2012년 12월 19일은 아직 2년 4개월이나 남았다. 그런데도 여름 뒤끝의 가을하늘처럼 성큼 다가온 듯 느껴진다. 8일 발표된 개각 때문인가.

MB發세대교체 실험, 1막일 뿐

8·8 개각은 이명박 제작, 김태호(48) 주연, 이재오(65) 특별출연의 새 정치드라마 하나를 예고했다. 히로인 박근혜(58)가 롱런해온 대선 대하드라마와 팽팽하게 시청률 경쟁을 할지, 싱겁게 종방할지 좀 더 두고 봐야 감이 잡힐 것 같다. 개성 있는 주연급 김문수(59)는 “자고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예측할 수 없고 검증되지 않고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으로 과연 선진국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앞으로 2년 남짓 새 대선 드라마 속에서 웃고 울 것이다.

6·2 지방선거 뚜껑이 열리는 순간부터 야당도 재미있어졌다. 김두관(51) 송영길(47) 안희정(45) 이광재(45)가 일약 주연급으로 떴다. 이들의 역할모델 노무현은 10년 전 지지율 1%로 시작해 대박을 터뜨렸다. 그 신화를 함께 만들었던 안희정 이광재는 ‘모든 게임에선 어떤 결과도 가능하다’는 사례를 직접 추가했다.

1969년 42세의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을 치고 나와 파란을 일으키고, 이에 가세한 김대중이 이듬해 대통령 후보까지 된 것은 요즘 젊은 세대에겐 전설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40대 기수론은 당시엔 꽃피우지 못했다. 김영삼은 그로부터 23년 뒤, 김대중은 28년 뒤에야 대통령이 된다. 양김이 60대와 70대가 돼서나마 꿈을 이룬 것은 역사적 공과(功過)를 떠나 한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양김을 키운 셈이 된 박정희가 나라를 바꾸겠다고 1961년 5·16을 일으킨 것도 44세 때였다.

역사는 반복도 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노무현 시대는 곧 386의 시대였다. 386은 노무현과 함께 정권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천둥벌거숭이 정치’로 국민을 힘들게 했고, 결국 이명박에게 노장(老壯) 정치시대를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명박 시대를 절반 남기고 치러진 6·2 지방선거는 정권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반란 드라마로 끝났다. 민심의 이런 재반전이 총리 김태호를 탄생시켰다. 임태희(54)가 대통령실장으로 ‘미래를 위한 스펙’ 하나를 더 쥐게 된 것도 능력에다 ‘상대적 젊음’이 보태졌기 때문일 것이다.

콘텐츠, 아우라, 희생 없인 안 돼

한나라당은 6·2 선거에서 졌지만, 완패 상황이었기에 더 빛난 사람은 반(反)한나라당 단일후보 유시민(51)을 제압한 김문수였고, 승리는 힘겨웠지만 아직 젊은 오세훈(49)이었다. 정몽준(59)과 정운찬(64)은 당정에서 잡은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값이 떨어졌다. 6·2 선거 패배나 세종시 수정 실패만이 이유랄 수는 없다. 그러나 한번 실패가 영원한 패배는 아니고 재기(再起)의 기회는 남아있다. 노무현 폐족(廢族)의 부활이 산 증거다.

세대교체 드라마는 여야당 누구에게나 위기도 되지만 기회도 될 것이다. 여권의 김태호, 야권의 김두관 송영길 등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 2012년을 향한 세대교체극은 조기 종방되고, 선배 세대가 오히려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 김태호가 총리 배역을 맡은 날 내숭 떨지 않고 “차기(次期)는 누가 시켜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한 것은 민심의 속성이 어떤 것인지, 권력의 정글 속엔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30대, 40대 유권자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30대, 40대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2007년 대선에선 20대 유권자가 당시 66세의 이명박을 54세의 정동영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이 찍었다. 이번에도 시험대에 오른 40대들의 속이 빈 것으로 드러나면 기성 주연급들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 민주당에서는 손학규(63) 정세균(60) 정동영, 그리고 박지원(68)도 각각 자신이 주인공이 될 정치드라마를 쓰고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박근혜는 친이(親李)의 여러 잠룡들에게 포위됐다고 움츠릴 일도 아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김영삼과 각을 세웠던 이회창은 이른바 9룡이 겨뤘던 당 경선에서 승자가 됐다.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김문수 김태호 오세훈 같은 잠재후보들이 자신만의 콘텐츠, 새로운 시대가치, 스스로 창출한 아우라(aura·기운),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세론이 새 막을 열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이명박도 가난했고 나도 가난했다, 가난해도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의 낡은 마케팅은 젊은애들을 웃기고 말 겁니다.”

반면 박근혜 피로현상이 더 확산되면 박근혜도 묘약이 없어질 수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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