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江은 다음 정권에서도 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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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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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의 직장인 H 씨는 토요일이면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자전거를 탄다. 매주 왕복 50여 km를 달리다 보니 하체가 탱탱해졌다고 자랑한다. 2, 3km 산책하는 정도지만 나도 한강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다. 강바람, 수변의 풀과 꽃, 멀리 문득 변하는 산색을 통해 느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맛을 포기하기 어렵다.

복원 반대, 환경 빙자한 자연 학대

그저 물이 흐르는 강에서 사람이 함께 노니는 강으로 탈바꿈한 것은 1982∼86년의 한강종합개발 덕이다. 한강공원과 둔치 산책로 자전거길 꽃밭길에서 걷고 뛰고 공도 차고 데이트도 하고 결혼행진곡도 울리는 것을 자연 파괴의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 일부만 문화스포츠레저경제 복합공간으로 잘 가꾸어진 것을 멀리 떨어져 사는 국민은 배 아파할지도 모르겠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다 섬진강까지, 그리고 한강도 강원 경기 충청 지역까지 ‘사람과 자연이 더 친화(親和)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어주는 게 균형발전과 형평의 논리에도 맞다.

‘빈곤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 폴 콜리에 교수가 두 달 전 파이낸셜타임스에 ‘새로운 자연의 윤리를 향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자연이 착취되고 있다고 하지만 발달된 최신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자연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낭만적 환경주의자들은 자연보전이 미래세대를 위한 도덕적 의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연이 중요한 것은 그 자체의 순수성 때문이 아니라 활용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의무 역시 자연자원을 있는 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더 생산적인 자원으로 바꿔 그 가치를 물려주는 데 있다. 자손들도 조상이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래세대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현재세대가 병든 강 때문에 막대한 재산과 인명 피해를 입고 있다. 2002∼2006년 사이만 보더라도 홍수 피해액이 총 13조5000억 원이었고 피해복구비로 21조 원을 퍼부어야 했다. 이 5년간에 국민이 감당한 ‘홍수 세금’만도 지금 진행 중인 4대강 살리기 예산 22조 원의 1.6배다. 퇴적토사가 쌓이고 바닥이 허옇게 드러난 강을 치료하는 사업을 미루면 미룰수록 혈세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재해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상처 입는 현실을 방치하는 게 옳은가, 인간이 자연을 살려내고 그 속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옳은가. 죽어가는 강을 내버려 두는 것은 자연 학대요,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사람의 막힌 혈관도 피가 흐르도록 뚫어주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길이듯이, 썩고 말라버린 강을 물이 제대로 흐르도록 바꿔주는 것이 생명존중이요, 진정한 환경주의 아닌가. 물 부족 시대에 수량(水量)을 늘리려면 토사를 준설해야 할지, 높아진 강바닥을 팽개쳐 놓아야 할지 답은 분명하다.

강 버린 조상, 후손들이 우러를까

울산 태화강이 입증하듯이 한국은 이미 크고 작은 ‘강 개선사업’을 성공시킬 능력을 갖췄다. 한국의 테크놀로지는 한강종합개발을 시작한 28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도화했다. 회전식 승강식 전도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절하는 보(湺)는 물 비축, 홍수 방지, 환경 개선에 효자노릇을 할 수 있다.

지금 하는 공사로는 낙동강 상류 수심이 사업 후에도 2∼4m밖에 안 된다. 이걸로는 대운하가 될 수 없다. 강의 곡선은 거의 그대로 살고, 생태하천 생태습지 물고기서식처 조성으로 동식물 종(種)도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대규모 공사 과정에 일시적 또는 부분적 피해가 생길 수는 있지만 이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해 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은 국익에도 민익(民益)에도 어긋난다. 아파트 벽 하나만 공사해도 주변에 잠시 피해를 줄 수 있고, 사람 발의 티눈 하나만 빼려 해도 피가 난다.

4대강 살리기는 이명박 정부가 하건, 그 전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했건 그 혜택을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린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강물은 친이(親李)도, 반이(反李)도 아니다. 정권에 대한 호오(好惡)를 다른 명분으로 포장해 4대강 살리기를 누더기처럼 만드는 일은 그만하고, 이 강토의 젖줄들이 정말 건강하고 아름답게 복원되도록 최소한 방해만이라도 않는 것이 후손들에게 덜 부끄러울 일 아닐까. 종교도 정치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진정한 자비와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8일과 22일 황강댐 물을 방류했다. 그때 임진강 중하류에 피해가 없도록 수량을 조절한 것은 지난달 완공된 연천군 군남 홍수조절지(댐)다. 댐 건설이라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환경원리주의자들 때문에 ‘댐을 댐이라 부르지 못하고’ 홍수조절지라 부르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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