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병호]리비아의 국정원 직원, 누굴 위해 일했을까요

  • Array
  • 입력 2010년 8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1964년)에 의해 국제 관행으로 제도화된 기피인물 추방 제도는 사실상 정보 관리를 위한 전용물로 변했다. 국제정치에서 스파이활동을 서로 양해하는 장치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국정원 직원이 최근 리비아에서 추방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정보기관 요원의 최초 추방 사례는 아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큰 사건으로 부각시키거나 비판적 시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어차피 해외 정보활동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런 위험은 정보활동의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열심히 할수록 위험의 정도는 증가한다.

정보기관 요원의 추방 사건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용히 처리되는 것이 관례다. 추방 자체가 처벌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활동은 모든 국가가 인정하는 공개된 비밀이다. 이를 빌미로 상호 국가 관계가 손상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 국제관행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과거 냉전 당시 소련이 미국 외교관을 추방하면 미국도 소련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식으로 대응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사례조차 양국 관계를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외교적 갈등으로 번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얼마 전에도 10여 명의 러시아 스파이가 미국에서 한꺼번에 체포됐다. 정보기관이란 으레 그런 일을 한다는 공통 인식하에서 스파이 교환이라는 오랜 관행에 따라 조용히 봉합됐다.

리비아도 기본적으로는 그런 차원의 시각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을 것 같다. 리비아의 독특한 체제 성격으로 보아 과도한 요구를 제기했을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리비아 내 활동이 지장을 받는다고 보는 것은 기우이다. 한국기업의 활동은 리비아로부터 우리가 일방적으로 받는 시혜 행위가 아니다. 리비아를 방문했던 국정원팀이 지난달 31일 협상을 마치고 귀국했다. 협의를 끝냈으므로 사건의 파장은 일단락됐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미국에서 추방된 10여 명의 러시아 정보요원을 접견하고 ‘조국은 무엇으로 시작되는가’라는 타이틀의 비공식 KGB가를 불렀다 한다. 푸틴 총리는 이런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정보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원래 정보활동이란 성공 사례는 드러나지 않고 실패 사례만 드러난다. 실패 사례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정보활동 자체의 위축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 푸틴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이병호 전 안기부 차장 울산대 초빙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