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FC 대한민국

  • Array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잔치는 끝났다. 단군 이후 첫 원정 16강. 부부젤라의 굉음이 잦아들기 무섭게 찾아온 이 기분 나쁜 적막함. 다시 파리 날리는 축구장. FC 대한민국이라. 제목만 봐도 뻔할 뻔자 아닌가. 군대에서 축구 좀 해본 사람이면 기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한국 축구가 마치 자기 일인 양 나서기 좋아하는 꾼이 아니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 칼럼은 이미 실패한 칼럼이다. 무릇 칼럼이라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전과 감칠맛 나는 위트, 그리고 약간의 정보가 녹아있어야 할 텐데. 기자는 동의하지 않지만 결론이나 해답까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초장부터 김이 팍 새지만 기왕 내뱉은 말. FC 대한민국에 대한 결론에 한번 도전해 보자.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나라에 프로축구단은 없고 오로지 태극전사만 있다고. 팬들도 마찬가지다. 붉은악마는 많아도 서포터스는 드물다. 4년에 한 번씩 6월이면 온 국민은 붉은 열병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뿐이다. 나머지 47개월은 흔적도 없다. 기자도 떳떳지 못하다. 사실은 공범이다. 대한민국이 우루과이에 진 다음 날 월드컵 기사는 헤드라인에서 내려갔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축구는 허구한 날 앉은뱅이다. 협회는 대표팀 간 경기인 A매치만 손꼽아 기다린다. 프로연맹은 뒷짐만 지고 있다. 노력을 안 한다는 게 아니다. 별 효과가 없다는 걸 해봐서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짜 표를 남발하고 관중 수 부풀리기에만 혈안이다. 해마다 발표되는 K리그 관중은 프로야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클럽 팀은 인공호흡 중인데도 이만큼 축구를 잘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지만 머리는 크고 팔다리는 가는 요즘 애들 같아 안쓰럽다. 물론 해결책이 없지는 않다. 팬은 더 축구를 사랑하고, 선수와 감독은 더 좋은 경기를 하면 된다. ‘참 쉽죠∼잉’이다.

가만히 보면 한국 축구는 우리네 인생과 참 닮았다. 꿈은 꾸되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꿈. 그때마다 절망하지만 손톱만 한 성취에도 크게 기뻐하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꾸는 일. 어릴 적 꿈은 많을수록 좋다고 배웠다. 언제부턴가 꿈은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어르고 달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굳이 마르크스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신은 죽었다”는 니체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한국 축구를 헐뜯는 게 마냥 즐거워 이렇게 자조 섞인 말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뭔가 건질 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월드컵이 끝난 뒤 변화는 보인다. 요즘 기자가 사는 아파트에선 주민들이 아이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 소음과 먼지에 원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기자의 아들을 비롯한 동네 아이들이 좁은 아파트 공터에서 수십 명씩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고 있어서다. 한 달 전만 해도 야구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했던 아들이었다. 그랬던 아들이 오전 3시 반에 자명종을 맞추고 일어나 축구를 보게 됐다.

니체라는 이름은 이제 기억도 아스라한 옛날 얘기가 됐다. 모든 이의 꿈이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꿈을 꾸지 않고는 꿈을 이룰 방법 또한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꿈을 지켜줘야 한다. 아이들의 수많은 꿈속에서 한국 축구도 성장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