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공종식]오바마가 LG공장에 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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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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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간 주에는 홀랜드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인구는 3만4000명으로 미국의 전형적인 소도시다. 1년 내내 ‘특별한 뉴스’가 없다. 매년 5월 첫째 주에 열리는 튤립 축제가 ‘빅 뉴스’에 꼽힐 정도다.

그런데 요즘 홀랜드 전체가 축제 분위기다. 15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기 때문이다. 홀랜드 시장은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환상적인 뉴스며, 놀라운 사건”이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홀랜드를 방문하는 이유는 LG화학의 전기자동차용 배터리공장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회사도 아닌 한국 회사를 방문하는 이유는 뭘까. 공장이 완공되면 고용하게 될 현지 직원도 400여 명으로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LG화학 공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LG화학이 생산하는 제품 때문이다. LG화학이 생산하게 될 리튬이온 배터리는 5년 안에 전기차 100만 대를 보급할 계획인 오바마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관련이 있다. 또 이 배터리는 제너럴모터스(GM)가 11월 내놓을 전기자동차 ‘시보레 볼트’에 장착될 예정인데, 시보레 볼트는 파산 위기를 겪었던 GM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LG화학 공장 기공식 참석을 통해 ‘환경 어젠다’ 부각과 GM회생의 신호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셈이다.

이제 한국의 2차전지(전기자동차 배터리, 휴대전화 및 노트북 컴퓨터 배터리 등 재충전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전지) 기술은 일정이 바쁜 미국 대통령이 따로 시간을 내서 현지 공장을 방문할 만큼 앞서가고 있다. 그렇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이 분야에서 후진국이었다.

1990년대 국내에서 생산되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100% 일본 제품이었다. 기자도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을 열었을 때 안의 배터리에 선명하게 ‘메이드 인 저팬’이라고 적힌 것을 보면서 “배터리에서 일본의 아성을 뛰어넘기 어려운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2000년 기준으로 2차전지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95%에 육박했다. 당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제로’였다. 소니, 산요, 마쓰시타 등 일본의 쟁쟁한 전자업체들이 석권한 2차전지 시장에서 국내업체들은 철저한 후발주자였다.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2차전지 공장 기공식을 가진 게 1999년이었다. LG화학이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착수한 시점이 1996년이었다. 이처럼 출발은 한참이나 늦었지만 국내업체들은 무서운 속도로 추격전을 벌였다. 시행착오 과정에서 ‘무모한 투자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은 ‘재빠른 추종자(fast follower)’ 위치를 넘어서 리튬이온 배터리 등 일부 분야에서는 일본 업체를 앞서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는 ‘개척자(first mover)’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 2차전지 시장에서 삼성SDI의 시장점유율이 19%, LG화학이 13%이다. 두 회사를 합치면 한국의 점유율이 32%에 이른다. 시장점유율 43%인 일본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제품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하는 2차전지 시장은 2020년에는 779억 달러로 팽창이 예상되는 시장이다. 불과 10년 사이에 세계 시장 점유율을 ‘0%→32%’로 높인 ‘2차전지의 기적’이 다른 분야에서도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공종식 산업부 차장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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