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훈]임기 중반 다발경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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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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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 이탈-어젠다 혼란 때문
법치-중간층 껴안아야 위기 탈출

작년 여름을 괴롭힌 것이 신종 인플루엔자였다면 올해 여름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치 현상이다. 이름은 대통령 임기 중반의 다발경화증(多發硬化症·Mid-Term Sclerosis Symptom). 정부의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감각에 이상이 오는’ 후반기 증상이 요즘 들어 속출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이라는 대형 스캔들, 지방선거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당내 자리다툼에 몰두하는 여당, 세종시 수정안 폐기에 따른 대통령 리더십 위축 등등. 이제 세간의 관심은 이명박 대통령이 중반 이후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로서 필자는 익히 보아온 임기 중반 경화증의 증세보다는 그 원인에 주목하게 된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닥친 혼돈의 밑바닥에는 구조적인 어떤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위태로운 저류(底流)의 정체는 보수정치의 위축이다. 이명박 정부의 권력 위축의 차원을 넘어 보수정치의 세력 위축과 어젠다의 혼란이 폭넓게 진행 중이다.

첫째, 세력으로서의 보수의 위축은 젊은 세대의 이탈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젊은 세대가 대거 투표장에 나타나고 주로 야당 후보를 지지한 모습을 88만 원 세대의 경제적 좌절의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보수 후보에게 40% 이상의 지지를 보냈던 젊은층이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거리감이다.

민주화 이후에 자라나서 부당한 간섭과 억압을 이해하지도 용납하지도 못하는 젊은층의 개인주의와 무신경한 보수 정부의 문화 충돌은 줄곧 악화됐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에서 시작된 충돌은 2009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체포와 무죄 판결을 통해서 악화됐다. 마침내 2010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개념 없는 정부’와 젊은 시민들의 문화적 갈등은 절정에 이른 느낌이다.

젊은층의 이탈뿐만 아니라 기성보수 세력 내에서도 부국강병형 보수 세력과 탈냉전-복합전략을 내다보는 30, 40대 신보수 세력 사이의 ‘소리 없는 반목’도 깊어지고 있다. 천안함 사태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거치면서 부국강병형 보수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듯하지만 이면에서는 미국과 중국 주도의 G2 시대에 걸맞은 신중하고 복합적인 전략을 기대하는 신보수 세력의 조용한 이반이 진행되고 있다. 결국 세력으로서의 보수는 오늘날 다양하게 그리고 조용히 분열되고 있다.

둘째, 최근 연이어 불거진 법집행 기관의 사고는 임기 중반의 권력누수를 넘어 보수정부가 지향하는 핵심 어젠다의 혼란상을 드러낸다. 몇 개월 전 법원과 검찰의 충돌로 시작된 법 집행의 난맥상은 얼마 전 일선 경찰서에서 벌어진 강압수사 의혹을 거쳐서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까지 내닫고 있다. 한편에서는 실적주의와 경쟁, 비선 라인의 전횡에다 책임을 돌리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보수 어젠다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보수 정부의 사활을 좌우하는 3대 기둥-경제의 활력, 법치주의, 중간층 끌어안기-가운데 그나마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첫째 항목뿐이다. 법치의 안정성이 흔들리면서 보수정치가 사회질서와 안정을 책임지는 데에 더 적합하다는 믿음도 흔들린다. 또 중간층의 박탈감이 커지면서 보수 세력은 점차 고립되어 가고 있다. 아마도 훗날 역사는 이명박 정부를 보수의 어젠다를 경제 살리기로 축소시킨, 세속화된 보수정부로 기억할 수도 있다. 결국 요즘 진용을 정비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보수 정치의 3대 목표를 균형 있게 추구하지 못한다면 비단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보수정치의 앞날도 순탄치 못하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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