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正義에 목마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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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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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구명보트를 타고 남대서양을 표류하고 있었다. 이들이 탔던 배는 폭풍에 떠내려갔고 구명보트에는 마실 물도 음식도 없었다. 선원 중 막내였던 17세 소년은 타는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바닷물을 마시는 바람에 죽어갔다. 20일째 굶주림에 지친 선원들은 소년을 죽이고 인육과 피를 마시며 연명하다가 가까스로 구조됐다. 재판정에 선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순순히 시인했다. 이들에게 살인죄를 묻는 것이 정의(正義)일까.

▷국내에서 최근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된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런 골치 아픈 에피소드를 제시하며 독자들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는 폭탄의 위치를 알고 있는 테러리스트를 고문해 자백을 받아내는 것은 나쁜 일인가? 자식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가 장기(臟器)를 파는 것은 잘못인가? 대다수 시민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거지를 강제 수용하는 일은 정당한가? 이런 알쏭달쏭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유보한 채 정의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적 탐험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경제 분야에서 정의는 정책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직결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대다수 나라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양극화 해결을 위해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의 돈을 국가가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마이클 조든과 같은 스포츠 스타에게 거액의 세금을 물리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는가? 국내 좌파 지식인들이 이 책을 ‘열공’하는 것이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어느 부분에도 좌파나 우파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정의의 문제조차 포퓰리즘이나 편 가르기의 대상이 되는 우리 현실은 안타깝다. 다만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룬 철학서가 이렇게 인기를 얻는 것은 정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증이 심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자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功利主義)와 ‘개인의 선택권 및 최소국가’를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견해를 담담하게 대비하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공리나 선택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시민의식 봉사 희생 등 공동선(共同善)을 되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견해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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