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석민]광화문광장에서 세종시를 생각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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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텅 빌 세종시의 두 집 살림
아름다운 공원된 광화문 일원

광화문광장에 왔다. 지하철에서 해치마당 통로로 돌아 나오는 순간 앞이 확 트이면서 세종대왕의 웅자(雄姿)가 한눈에 들어온다. 설계자의 의도가 감탄스럽다. 임금님 뒤로 돌아가 보니 용상이 지하로 통하는 출입구다. “이런 게 있었네!” 비밀의 공간으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 본다. 지하 3층 정도 깊이에 세종기념관이 깜짝 선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기대했던 것 이상이다. 내친 김에 상상의 날개를 편다. 두 개의 빌딩을 이어 붙인 정부중앙청사,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미국대사관 등 육조 거리에 들어선 주요 기관, 여기에 청와대까지 모두 이전하고 북악산, 청와대, 경복궁에서 세종로로 이어지는 드넓은 공간을 통으로 공원화하면 어떨까.

이는 감상에 젖은 필자만의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다. 세종시 논란의 기원인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건설 공약이 대충 그러했다. 수도권 집중억제, 낙후된 지역경제 해결이야 빤한 레토릭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이전하고 그 일원을 서울시민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했다. 서울 강북지역 발전에 새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의 경쟁자였던 이회창 후보는 발끈했다. 선거를 목전에 둔 12월 13일, 특별기자회견의 메시지는 그의 굳은 표정만큼이나 단호했다. “정부와 국회, 청와대를 옮기면 외국대사관, 언론사, 대기업, 공기업, 정부산하단체, 금융기관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 수도권이 붕괴하고 나라경제가 극도로 불안해질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틀 후인 12월 15일 충청권은 행정수도, 서울은 금융 비즈니스 중심도시, 경기도는 국제교육 중심지, 인천은 물류중심도시로 육성하겠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4일 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과 동시에 새 대통령은 수도이전 공약 실행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언어엔 거침이 없었다. “신행정수도 건설을 주제로 내가 지난 대선에서 좀 재미를 봤다.”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면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계속 불리해질 수 있다.” 한나라당의 정치적 판단이 실제 그러했다.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2003년 말 여야 합의로 통과된 건 이런 연유였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후 헌재의 위헌판결로 이 21세기 판 묘청(妙淸)의 천도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나나 했다. 하지만 차라리 그만도 훨씬 못한 꼼수가 등장한다. 수도분할이다. 대통령과 국회는 서울에 두되 중앙행정기관 12부 4처 2청을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수도를 둘로 쪼개는 데서 오는 문제는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장차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서울과 충청을 오고가며 길에 뿌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집 살림이다. 지금도 정부과천청사 장차관 및 공직자들은 서울에 따로 공간을 마련해 두고 회의가 있을 때마다 이용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변변한 자족기능이 없는 세종시가 밤이면 텅 빈 유령도시가 되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미국 워싱턴만 해도 밤을 지키는 이는 대통령과 그의 가족뿐이라는 조크가 있을 정도다.

이번 국회는 이러한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했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역사적 결정을 또다시 당리당략, 계파이익으로 바꿔 버렸다. 국회의 결정이 난 만큼 이제 세종시 수정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정운찬 국무총리는 정치권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처음부터 예견된 실패였다. 이들은 애당초 소통이 가능한 집단이 아니었다. 소신과 진정성을 갖고 대하면 합리적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리라 믿은 학자 출신 총리를 정치권은 작정한 듯 조롱하고 비웃었다. 이제 이들은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초래한 책임을 물어 정 총리의 사퇴를 종용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세종시 원안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포퓰리즘의 산물이었음은 코흘리개도 다 안다. 이에 대한 정당한 반론 제기가 국론분열인가. 의회주의 절차에 따라 대안을 제시하고 표결을 거쳐 결과에 승복하는 게 사회갈등인가. 국민대표랍시고 당리당략에 입바른 소리 한번 못 내다가, 종종 돌격대로 돌변해 소화기와 해머로 의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곤 하는 당사자들의 입으로 차마 할 소리는 아닐 듯싶다.

시간을 내 돌아본 광화문 일원은 아름다운 공원이 되어 있었다. 앞으로 이 공원이 잘 관리되기 바란다. 혹시 아는가. 이 공간이 세종시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장차관이며 공무원들의 소중한 쉼터가 될지. 오래전 이 거리를 다스렸던 성군의 쓸쓸한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이도저도 아닌 광화문통의 모습에 자신들의 신산(辛酸)한 처지가 그나마 낫다 여기는 마음의 위안처가 될 수 있을지.

윤석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youns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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