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 위아래 모두 낡은 수사관행 벗어던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9일 03시 00분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양천경찰서의 고문 의혹사건은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지방경찰청 지휘부의 책임도 크다”며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경찰청은 채 서장의 행위를 항명으로 보고 그를 즉각 직위해제했다. 이번 고문 의혹사건은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놓고 경찰 간부들이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찰 전체가 자성(自省)을 바탕으로 고문의 근본적 원인과 항구적 대책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채 서장은 “검거 실적으로 보직인사를 하는 게 문제”라면서 “현재의 실적평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의 무리한 수사 실적 평가가 고문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선 경찰서장이 직속상관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물의를 일으킨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되기 어렵다. 경찰 조직은 상명하복 관계와 기강이 무너지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경찰의 책임 있는 간부라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옳다.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도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채 서장이 제기한 ‘실적 중심주의’에 대해서는 일선 경찰관들이 적잖은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 수로 경찰서 실적을 평가하다 보니 사건을 일단 송치부터 하고 보자는 풍조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송치보다는 기소 여부를 기준으로 실적을 평가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무리한 수사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경찰의 고문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찰관들의 낡은 의식과 수사방식을 바꿔야 한다. ‘자백이 증거의 왕(王)’이라는 구태의연한 수사관행에서 헤어나지 못한 경찰관이 아직도 적지 않은 듯하다. 먼저 범행을 자백 받고 그 자백에 따라 물적 증거를 찾아내는 ‘선(先)자백, 후(後)증거’ 방식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과학적 수사방식을 통해 피의자가 꼼짝 못할 물적 증거를 먼저 찾아낸 다음 자백을 받아내는 심문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럼에도 피의자의 인권보호라는 중요한 가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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