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곽노현의 저울, 곽노현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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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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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동기동창들은 졸업횟수에 맞춰 기수별 정기총회 날짜를 정한다. 61회면 6월 1일 모임을 갖는 식이다.

6월 8일. 68회 동기생들이 모였다. 1972년 졸업생들이다. 그런데 이날, 동창회와 담을 쌓고 살다시피 한 동기생이 모습을 나타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였다. 곽 당선자는 학교를 졸업한 뒤 딱 한 번 동창회에 나갔을 뿐이라고 한다. 그날이 두 번째인 셈이다. 곽 당선자는 최근 사석에서 “참모들이 나가야 한다고 강권해 참석하긴 했는데, 아마 나를 찍은 동문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곽 당선자는 경기고에 서울대 법대를 나온,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KS마크’다. 그런 사람이 동창회와 담을 쌓고 사는 이유는 보통 두세 가지로 나뉜다. 자존심이 상할 만큼 실패했거나, 아님 원래 성격이 비(非)사교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동창회 특유의 ‘패거리문화’가 싫거나…. 곽 당선자의 삶의 이력, 언행,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세 번째 경우에 가깝지 않나 싶다. 모르긴 해도 그 연배의 경기고 모임이라면 곽 당선자가 비판하는 엘리트주의적 분위기도 팽배할 것이고.

그런 캐릭터는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리더십에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감 캐릭터로는 ‘A-’쯤 되지 않을까? 특히 끼리끼리의 패거리문화에 찌든 서울시교육청의 새 수장(首長)으로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거기에 더해 나는 그가 법학도였다는 사실, 무엇보다 법의 본질과 이념을 추구하는 법철학도(法哲學徒)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 자신도 취재기자들에게 법철학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교육감 당선자가 된 지금도 법철학을 되새김질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고 싶다.

우리 대법원엔 정의의 여신이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지만, 고전적인 법의 초상(肖像)은 칼과 저울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칼과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공평한 저울. 곽 교육감이 한 손엔 칼을, 다른 한 손엔 저울을 들고 교육비리와 좌우 편향을 바로잡아 나간다면 ‘진보교육감’의 등장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곽노현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보교육감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물론 그는 진보진영이 만들어낸 교육감이다. 무려 195개 단체가 참여했다. 또 선거라는 건 꼭 엽관제(獵官制)가 아니라도 지지그룹과 당선자 사이에 일종의 정치적 채권·채무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정당개입을 배제한 교육감 선거라도 선거 일반의 그런 ‘숙명’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곽노현을 찍지 않은 65%가 아직도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곽노현을, 아니 곽노현의 저울과 칼을 주목한다.

6·2지방선거 직전 전교조는 곽 후보에게 교원평가제 반대를 확약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원평가제에 관한 곽 후보의 원칙은 반대가 아니라 개선이었다. 아무리 최대 지지그룹이라도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그러자 선거캠프에 나와 있던 전교조와 민노총 관계자들이 ‘이틀간의 스트라이크’(박상주 대변인의 표현)를 벌였다고 한다. 찻잔 속의 태풍이었는지 몰라도 내겐 곽노현의 저울을 보여준 스모킹 건(smoking gun)으로 읽혔다.

사흘 후, 곽 당선자는 새로운 항해의 돛을 올린다. 내가 본 곽노현의 저울과 칼이 헛것이 아니었기를 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기를 빈다.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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