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장우]벤처기업의 ‘작은 거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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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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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한국 대표단이 방문할 때만 해도 500여 개에 불과했던 벤처기업 수가 2만 개를 돌파했다. 당시 벤처기업이 3000개였던 이스라엘은 국제적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한국의 중소벤처기업이 동남아시아 중동 국가와 중국 등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벤처는 한국경제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한마디로 연구개발 없는 하청생산 중심의 중소기업계에 혁신형 성장 모델을 제시했다. 이러한 혁신 벤처가 각종 신성장산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 수출전략 제품이 이들의 부품으로 채워진다. 바이오와 의료장비 산업에도 첨단 신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무한한 사이버 공간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기업들도 벤처다. 이들은 또 음악 드라마 공연 등 한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혁신 벤처의 역할은 미래진행형이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듯 혁신 경제(innovative economy)의 주역은 역시 벤처기업이다. 이들은 왕성한 기업가정신으로 기술혁신을 주도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청년의 꿈을 지켜준다. 21세기를 지배하는 정보통신, 인터넷, 모바일 기술은 모두 20대 청년의 꿈과 도전에서 나왔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리 양, 세르게이 브린 등이 그들이다. 이제는 청년의 꿈과 상상력을 지켜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며, 이 때문에 벤처 활성화는 선진국 진입에 필수요건이 되고 있다.

하지만 벤처 활성화는 2만 개라는 양적 성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벤처 버블 경험에서 보듯이 적지 않은 성공 함정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의 성공 방정식이 미래에 계속 통할지도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벤처기업은 자신들의 경쟁력 원천을 재점검해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 기술개발에 모든 것을 거는 개발지상주의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협력이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개방형 혁신전략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개발-생산-영업’이라는 전통적인 가치사슬이 파괴되고 부가가치가 원천 특허와 고객 관계로 이동하는 세계적 흐름을 반영한다. 기업은 잠시 피었다 스러지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21세기 경영환경은 혁신적인 단일 제품을 만드는 기업보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전략혁신형 기업을 원한다.

현 정부도 기업가정신의 고취와 벤처 재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청년의 기업가정신에 아직 불이 붙지 않고 있다. 그 이유를 청년들의 안정지향적 성향으로 치부하지 말고 획기적인 정책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전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 청년들이 아직 창업에 도전할 만한 이유와 명분을 못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업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정책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또한 탄탄한 성공 모델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벤처기업 2만 개 중 적어도 10%는 지속가능한 국제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제 벤처 육성 정책도 강한 기업을 중심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다행히 글로벌화와 연구개발 집약도가 뛰어난 스몰 자이언츠(Small Giants)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한국형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중소기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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