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신]한국판 MIT 미디어랩 성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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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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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경제부가 정보기술(IT) 강국 부활을 이끌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한국판 MIT 미디어랩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은 선도적이고 창의적인 미래 기술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연구기관이다. 공대 소속이지만 ‘Media Arts & Science’라는 학위를 부여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연구를 과학위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미래 기술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일상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에 연구의 초점을 맞췄다. 즉 기술자체의 개발이 목적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인간의 삶과 사회의 변혁의 과정을 중시하는, 인간 중심의 연구가 미디어랩이 추구하는 연구방향이다.

한국판 MIT 미디어랩에서는 과학영재학교 출신위주로 선발된 학생이 기존의 이론과 논문 위주의 교과에서 탈피하여 연구와 실습 위주로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교과를 이수한다. 계획 초기에는 대상자를 과학영재학교 출신으로만 제한하고자 했으나 일반고교 출신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왜 애초에 대상자를 과학영재학교 출신으로 제한하고자 했는가이다. 지식경제부가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를 IT 기술에 능통한 과학기술자로 보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판 MIT 미디어랩의 목표가 단순히 새로운 기술개발이라면 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오히려 낫다. 지식경제부가 한국판 MIT 미디어랩을 통해 IT 강국 부활을 이끌 명품 인재를 육성하고자 한다면 목표에 대한 접근법과 방법론에 대해 명확한 목적의식을 지녀야 한다. 즉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 궁극적으로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최근 아이폰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열풍이 우리사회의 IT 지형을 바꾸어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이 아닌 창의력이 요구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IT 서비스 시대가 되면서 왜 우리사회에서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느냐는 질문이 등장하기도 한다. 정부는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2년까지 소프트웨어 융합 분야에 1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여기서 되짚어 보아야 할 점은 애플 신화를 써나가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단순히 소프트웨어 교육을 통해 양성될 수 있는가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사에 대해 소개할 때 강조하는 내용이 있다. 애플은 기술개발회사가 아니며 기술(Technology)과 인문학(Liberal Arts)의 교차로(Crossroad)에 있는 회사라는 말이다. 즉 애플이 다른 회사에 비해 지니는 차별점은 기존의 기술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용자 중심에서 재해석하여 적용한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차별점의 근간이 인문학임을 꿰뚫었다. MIT에서도 글쓰기와 의사소통센터를 설립하여 글쓰기 강좌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학생이 인문학을 최소 8과목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서의 스티브 잡스는 우리나라에 많다고 본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IT 산업 리더로서의 스티브 잡스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신제품 발표회장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는 자유로운 기술 사상가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국내 IT 산업이 추구한 방향에 대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IT 산업의 발전방향에 맞는 새로운 인재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판 미디어랩을 통해 육성되는 학생이 수평적이고 개방된 연구 환경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창의적인 사색을 통해 기술과 인간 삶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재신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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