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일, 謝罪하고 주민 살려야 자신도 살길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8일 03시 00분


국제앰네스티는 어제 연례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말 북한의 화폐개혁 이후 (경제사정 악화로) 평양에서 시위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북한 2400만 인구의 40%에 가까운 900만 명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당했으며, 수천 명이 식량을 찾아 중국으로 국경을 넘었다는 조사 결과도 공개됐다. 지난달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탈북여성인권연대 주관으로 열린 ‘북한여성의 인권침해’ 세미나에서 탈북자 박연화(가명) 씨는 “탈북했다가 잡힌 여성들은 북한에 끌려가느니 죽는 게 낫다며 품고 있던 약을 먹고 피를 토한 사례도 있다”고 증언했다.

굶주리는 인민과는 대조적으로 북한 최고 권력자들의 2세들로 구성된 사조직 ‘봉화조’는 위조지폐 유통과 마약 밀거래 등에 관여하면서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 서방 정보당국과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소수 권력집단이 흥청거리는 다른 한편에선 수용소에 갇혀 짐승보다 못한 삶을 강요당하거나 처형의 공포에 떠는 정치범만도 20만 명을 넘는다.

북한은 어제 인민군 총참모부 명의의 이른바 ‘중대조치’ 7개 항을 밝히면서 동·서해 군 통신연락소를 폐쇄하고 개성공단 육로통행을 차단하겠다고 했다. 개성공단마저 폐쇄되면 공단에서 일하고 끼니를 해결하는 북한 근로자 4만여 명이 다시 굶주림으로 내몰릴 것이다. 지금 같은 긴장 대치가 장기화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강화될 경우 북한 주민은 더 깊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 이후 되레 무력도발 위협을 높여가는 것은 6·25전쟁 때 중국이 보여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을 지원)를 이번에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끝까지 감싸주기는 어렵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인 환추시보는 그제 사설에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한국에 대한 반박과 대응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은 무관하다면 증명을 하고, 연루됐다면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수룽 칭화대 국제전략 및 발전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맹목적인 북한 감싸기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김정일 집단이 고립과 자멸에서 벗어나려면 주민을 굶겨죽이고도 모자라 동족과 세계를 상대로 자해 공갈의 수위를 높여가는 위험천만한 도박부터 중단해야 한다. 천안함 무력도발에 대해 ‘민족’과 국제사회 앞에 사죄(謝罪)하고 개혁, 개방을 통해 주민을 살리는 길을 택해야만 스스로도 살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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