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오석]英 캐머런이 확인시켜준 정당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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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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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총선 결과 650석 가운데 노동당이 258석을 차지한 반면 보수당은 306석의 득표로 13년의 야당 시절을 끝내고 제1당으로서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보수당 승리의 원동력은 기존 이미지를 과감히 바꾸고 변화를 선도한 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9년 전인 2001년 8월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직접 만나본 초선 의원 시절의 캐머런 당수는 친절한 소장파 정치인으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점치게 했다.

보수당은 원내당 중앙본부 전국연합 전당대회 등 네 개의 의사결정 센터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자와 조합주의자 그리고 중도노선이 협력하거나 경쟁하는데 온건개혁파와 우파가 주요 논쟁을 주도했다. 이런 보수당에서 캐머런 당수가 선도한 변화는 크게 두 가지 틀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온정적 보수주의이다. 캐머런 당수는 때로는 같은 당 의원과도 진보적 가치를 둘러싼 격렬한 정책 토론을 벌일 정도로 개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즐긴다. 그가 온정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까닭은 기존의 보수주의자에 비해 동성애에 대한 우호, 환경주의의 존중, 인종적인 다양성 옹호, 중독성이 약한 마약의 합법화 등 진보적인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틀은 사회의 가치 중시이다. 캐머런 당수는 지난 13년 동안 집권한 노동당 정부를 큰 정부(Big Government)라고 비난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려 한다. 이 점에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유사한 듯 보이지만 대처 전 총리가 개인주의를 강조하며 급진적 방식으로 경제를 개혁하려 했다면, 그는 사회단체 교회 지방자치단체 자선봉사단체의 역할이 강화된 큰 사회(Big Society)를 이루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영국 총선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적으로 영국의 정당은 중앙당과 지방당 간 잘 조직된 네트워크 구조를 갖췄으며 정교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통해 유권자에게 분명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강하고 책임 있는 체제로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사회와 정당 간 연계가 약화되면서 정당은 일반 대중에게 의존하던 거대 정치조직의 위상에서 소규모 엘리트가 주도하는 엘리트 조직으로 변했다. 정당 간 차이가 불분명하고 지방과 중앙 간에 약한 연대를 보여주고 국가와 사회세력을 중재하지 못하는 카르텔 정당으로의 변모는 오늘날 한국 정당이 해결할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둘째, 영국 총선은 한국에 뿌리 내리지 못한 참여형 정치문화의 필요성에 대한 학습의 기회가 된다. 정치과정에의 참여를 통해 자신의 의사와 이익을 반영시키는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인 참여형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관심 확대, 이해관계의 조직화에 대한 참여, 기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조직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는 전통적인 정당 강령을 버리고 유권자의 수요에 상응하여 정책노선을 수정하는 소위 포퓰리즘에 의해 그늘진 신정치(new politics) 시대를 맞아 더더욱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셋째, 이번 총선에서 닉 클레그의 돌풍으로 기대를 모았던 자유민주당은 오히려 현재 의석 대비 5석이 감소(57석 확보)함으로써 영국 선거가 여전히 인물론이 아닌 정당론에 기반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 의석 대비 보수당은 97석이 증가, 노동당은 91석이 감소, 자민당은 5석 감소, 기타 정당은 1석 감소로 나타났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투표유동성을 높이는 인물론보다는 개별 정당의 차별화된 정당 강령과 정책내용을 개발하는 정당론이 중심이 돼야 한다.

양오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연세-SERI EU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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