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이런 Green, 저런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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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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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전동기)가 전기를 얼마나 쓸 것 같은가. 놀라지 마시라. 발전된 전체 전력의 60%를 모터가 소비한다. 대부분의 공작기계는 물론이고 냉장고 에어컨도 모터에 의해 작동된다. 만약 모터효율을 높여 현재보다 전기를 70∼80% 절약한다면 어떨까. 어림셈하면 전체 전기소비량의 45%가 절감된다. 그런 꿈같은 모터가 실제로 있다. 무정류자 모터다.

모터의 전기소비를 70% 줄인다면

재래식 직류모터 속에는 구리 브러시가 있다. 회전축이 90도(2상 방식) 또는 60도(3상 방식) 돌 때마다 코일에 흐르는 전류의 방향을 바꿔주는 정류자의 주요부품이다. 무정류자 모터는 브러시를 없애고 그 대신 전자적으로 통제해 전류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브러시 마찰로 인한 마모 분진 소음 문제가 해결되며 폐열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 회전속도 선택이 자유로워져 꼭 필요한 만큼의 회전수를 내게 되므로 효율이 급상승하는 것. 재래식의 1.5∼2배 값이지만 마찰과 열을 없앤 덕분에 수명은 2∼3배로 늘어난다.

현재 발전의 절반은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모터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온난화를 막는 방법으로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 타기, 에너지가계부 쓰기 등 10계명을 제시했다. 그러나 온난화를 막는 방안 중 이 모터처럼 효과적인 것이 그리 흔할까.

이런 모터는 미국의 GE와 SN테크, 독일의 EBM 3개사가 만들고 있다. 이 중 SN테크의 창업주가 제임스 정 씨(51)다. 그는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5년 연속 수상했고 100건이 넘는 특허를 땄다. KAIST 연구원, 삼성전자 기술고문을 지냈으며 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40대 초반 초절전 선풍기를 개발한 그는 ‘사업적으로도 성공한 발명가’를 꿈꿨지만 한국에선 사업이 순탄치 않았다. 2003년 도미(渡美)해 무정류자 모터로 다시 일어선 그는 이제 세계 30여 공조기 제조사를 고객으로 확보해 기업가로서 뿌리를 내렸다. “3개사 중 적어도 기술-효율-가격경쟁력에선 우리가 압도적 우위”라는 게 그가 가지고 다니는 실험데이터의 골자다. 경기 의왕시에 연구소를 둔 이 회사는 아시아시장을 겨냥해 국내공장 설립도 추진 중이다.

사실 환경론자들이 제기하는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과학자들 사이엔 이견이 많다. 온난화가 정말 진행되고 있는지, 이산화탄소가 그 주범인지, 온난화가 그렇게 무서운 건지, 거꾸로 지구냉각화를 더 걱정해야 할 시점은 아닌지, 관련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해도 풍력-태양열-조력발전 등이 해법으로 적절한지…. 파고들수록 논란도 커진다.

손쉽고 효과적인 ‘그린’ 실천운동

반면 자명한 것도 있다. ‘전기를 아끼면 한정된 지하자원이 덜 소진되고 대기오염도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자원을 거의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에는 더욱 솔깃한 얘기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 모터의 효율성에 주목해 구매회사에 마력당 120달러씩 법인세를 깎아주는 산업에너지효율인센티브법을 입법해 4월부터 시행한다. 그린은 오바마 정부의 주요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에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효율 모터의 기준은 ‘고효율 3상 유도전동기’다. 15년 전 고시된 것으로 지금 눈으로 보면 형광등을 고효율 전등으로 지정하는 것에 비견될 정도의 낡은 잣대다.

어떤가. 에너지 절약을 위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만큼 신경 써야 할 분야가 고효율 모터의 개발 보급 아닌가. 신재생에너지 투자도 좋지만 기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못 쓰고 있다면 그게 진짜 녹색인가. 그리고 우리도 이제 ‘기술은 앞서가는데 제도가 못 따라가는’ 일은 고칠 때쯤 되지 않았는가.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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