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지금 필요한 소통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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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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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바로 다음 날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친지를 만났다. 26일 밤 뉴스 속보를 보는 내내 46명이나 되는 실종자 가족이 어른거려 눈물을 흘리다가 깊은 잠에 빠진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는데 왠지 모를 분노가 치솟아 한숨도 못 잤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날 밤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잠 못 이루는 이가 어디 한둘이며, 고귀한 생명을 위해 두 손 모아 간구하는 손길 또한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지.

전 세계 주요 미디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뉴욕 증시까지 널뛰기를 했다는 소식이고 보면 세계의 이목이 다시금 한반도를 향해 집중되고 있음이 실감난다. 한반도 정황이 매우 미묘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일은 오늘 우리에게 특별한 경고와 귀중한 교훈을 동시에 전해준다. 경고인 즉, 초(超)위험사회 속을 안전하고 슬기롭게 지나기 위해선 공고한 사회안전망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수라는 점이다. 교훈인 즉, 위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국가와 국민 사이에 깊은 신뢰와 열린 소통이 필히 요구된다는 점이다.

사회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우리 모두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종류의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했음은 이미 공론화된 바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위험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초국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아 예방이 쉽지 않은 데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예측 또한 좀처럼 쉽지 않은 특징을 지닌다.

신종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특별히 대한민국은 웬만한 위험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위험 불감증에 빠진 사회요, 인재(人災)가 반복되는 현장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위험 망각증이 깊은 사회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더하여 위험에 대처하는 방식 자체가 위험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천문학적 규모의 사회적 비용을 치렀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난 ‘실종자 휴대전화 발신 루머’야말로 인터넷의 초위험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근거 없는 위험한 뉴스가 인터넷 망을 타고 일파만파 확산되는 동안 실종자 가족이 떠안아야 했던 허망함에서부터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했던 허탈감에 이르기까지 너나없이 희생자가 되었음을 기억할 일이다.

이들 위험이 야기하는 혼란과 혼돈을 헤쳐가기 위한 필수 요건으론 공고한 신뢰에 기반을 둔 열린 소통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을진대, 이제 정부와 군은 국민을 향해 솔직하고 투명한 소통에 나서야 한다. 행여 과거 관료적 권위주의 국가시대의 관행이 되살아나 국가 안보 및 기밀을 명분으로 국민의 눈 가리기를 시도한다면 이는 수습 불가능한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와 군은 국가 안보의 의미를 파악하고 중요성을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충분히 고양되어 있음에 신뢰를 보내야 한다.

국민 또한 정부와 군을 향해 무조건적 불신이나 소모적 비판을 넘어 공공기관의 메시지를 믿고 따르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히 밝혀진 건 없다. 천안함이 왜 폭발했는지 도무지 오리무중이요, 왜 그리도 많은 실종자가 발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선 섣부른 추측이나 예단은 절대 금물이요,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거나 마녀사냥식의 여론재판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 모두 조용히 두 손 모아 간구하며 기다릴 때다. 실종자 가족이 더는 이중 삼중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깊은 배려와 따스한 위로의 마음을 간직한 채 말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의 슬기로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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