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헌진]中농민공 빈자리 메우는 ‘黑工’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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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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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일을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중국 광둥(廣東) 성 포산(佛山) 시의 한 공장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급속히 유입돼 불법 취업하고 있는 동남아인과 아프리카인들이 과거 중국인들이 했던 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중국 내 외국인 불법 취업이 광둥 성 등 주장(珠江) 강 삼각주 지역에서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광둥 성 유력지 광저우(廣州)일보는 많은 공장이 외국인을 불법 고용하고 있다고 29일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베트남 미얀마 스리랑카 등 동남아인들이 최저임금 1000위안(약 17만 원) 안팎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중국행이 늘면서 일부 도시에는 아프리카인 밀집 거주지가 생기고 있다. 올해 2월 주하이(珠海)에서는 취업을 위해 불법 입국한 외국인 66명을 태운 버스가 공안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밀입국을 주선하는 조직도 많이 생기고 있다. 베트남과의 접경도시인 광시좡쭈(廣西壯族)자치구 둥싱(東興), 핑샹(憑祥) 등에서 활동 중인 조직은 밀입국을 알선하고 입국 이후 직업을 소개하는 데다 가짜 신분증까지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를 한다고 한다.

이미 이들을 지칭하는 ‘헤이궁(黑工)’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불법이라는 뉘앙스가 담긴 ‘검은 흑(黑)’에 ‘노동자 공(工)’을 붙인 말이다. 주장 강 삼각주가 중국의 대표적 경제발달 지역이고 취직자리가 널려 있는 데다 중국 농민공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면서 외국인 불법 취업은 확산될 태세다.

올해 들어 중국 언론들은 내륙의 농민공이 오지 않아 수출기지인 연해의 많은 공장들이 일손 구하기에 혈안이라고 전하고 있다. 내륙 경제가 발달하면서 타향살이보다는 고향에 정착한 농민공이 크게 증가한 탓이다.

게다가 점점 비율이 높아지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2세대 농민공들은 부모세대와 달리 힘든 일을 기피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연해 지역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젊은 농민공은 많지만 공장 일손은 여전히 달리고 향락산업이 번성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인력을 수출해 오던 중국이 외국인 불법 취업 같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법 위반 여부를 떠나 상대적으로 잘사는 나라에 낙후된 나라의 인력이 유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도 불과 10여 년 전에 본격화된 현상이 벌써 중국에서 나타난 것을 보며 중국의 굴기(굴起·우뚝 일어섬)가 새삼 두렵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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