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리베이트 일벌백계’ 하루 만에 접은 식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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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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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청은 18일 영진약품의 전문의약품 102개 품목에 대해 한 달간 판매중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1∼7월 병의원과 약국에 10억70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랜딩비’로 제공했다는 이유다. 랜딩비란 의약품을 병원에 처음 납품할 때 제공하는 리베이트를 말한다. 그러나 판매중지 처분은 하루 뒤인 19일 5000만 원 과징금으로 대체됐다.

현행 약사법은 판매중지 처분을 최대 5000만 원까지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통 제약사는 “약이 공급이 안 되면 약을 복용 중인 환자가 위험해진다” “이미 완료된 계약에 대해 약을 공급하지 못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유로 판매중지 처분 대신 과징금을 내겠다고 한다. 식약청 관계자는 “업체의 읍소를 거절할 수 없다”며 슬쩍 과징금을 부과한다.

식약청이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회사 문을 닫을 정도의 조치를 내렸다가 하루 만에 5000만 원만 내도록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식약청은 판매중지 조치로 제약사가 문을 닫는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같은 강력한 조치를 내린 것은 제약사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업체의 읍소로 하루 만에 철회할 조치였다면 처음부터 신중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정부의 리베이트 단속은 공염불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번엔 제약사가 두려워하는 약가 인하도 할 수 없었다. 지난해 8월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의 건강보험 약가를 최고 20%까지 인하하는 ‘국민건강보험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이 시행됐지만 이번 랜딩비 제공은 지난해 1∼7월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리베이트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한 약사법과 의료법 개정안 5개가 계류 중이다. 리베이트 제공자와 수수자를 모두 처벌하는 ‘쌍벌제’를 도입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제약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징역도 아니고 벌금도 아니다. 바로 제품을 팔지 못하는 것, 이윤을 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리베이트 근절에 대한 의지를 정말 갖고 있다면, 리베이트를 주고받으면 제약사가 문 닫을 수도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필요가 있다.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는 정말 안 된다는 인식 아래 연구개발에 매진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 제약사를 살리는 길이다.

우경임 교육복지부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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