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연수]재난 앞엔 경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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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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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의 총아라는 원자력 잠수함에 카나리아나 토끼를 태운다고 한다. 사람이 감지하지 못하는 공기와 산소의 부족을 카나리아는 울음으로, 토끼는 몸으로 경종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위험신호를 감지한 잠수함은 수면 위로 떠올라 공기를 보충한 후라야 다시 바닷속 항해가 가능해진다. 우리 사회의 위험을 감지하고 경종을 울려주는 카나리아는 어디에 있을까.

1 대 29 대 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재난은 갑자기 일어날 수 있지만 대부분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경미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발생한다는 법칙이다. 한 번의 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고, 작은 사고 이전에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300번의 사소한 전조가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년)도 부실공사와 허술한 관리, 옥상바닥 균열 등 ‘300’에 해당하는 전조가 있었지만 무시되고 말았다. 또 붕괴사고 직전에 에어컨 진동소리에 대한 고객의 불만이나 벽 균열에 대한 위험경고 등 ‘29’에 해당하는 작은 사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런 전조와 작은 사고를 무시한 결과가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사망 5명, 부상 8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경기 의정부 경전철 공사장 사고(지난해 7월)를 보자. 4월과 5월에 공사장 안전관리가 부실하다는 언론보도와 민원이 있었다. 이런 정보를 재난의 전조로 관리하여 공사장 안전관리대책을 사전에 마련했더라면 귀중한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소래철교는 1999년도에 정밀진단 결과 D급 판정을 받은 위험 시설이지만 지자체 간 이견으로 방치됐었다. 재난전조정보 관리를 통해 지난달 11일 통행을 금지한 덕분에 보름 후 철교 교각기초가 붕괴됐음에도 인명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재난전조정보관리제도는 위험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감지된 신호를 과학적인 분석과정을 거쳐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는 방안을 말한다. 소방방재청이 올해 역점시책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장조사 언론 민원 점검자료 등 재난의 전조와 관련된 정보를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집한다. 그런 다음 매주 또는 수시로 개최되는 재난전조 정보분석 시스템(회의 등)을 통해 정보 간 인과관계와 중요도를 분석하고 재난 발생 가능성, 예상 피해규모, 국민생활 안전도를 토대로 위험등급을 분류한다. 위험등급이 결정되면 기획점검 및 긴급안전조치를 시행해 사전에 재난 위험요인을 제거한다. 올해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는데 3월 현재 9회의 분석회의를 개최해 122건을 전조정보로 관리하고 그중에서 109건에 대해서는 안전조치를 취했다.

마크 트웨인은 일찍이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막연한 믿음은 방심을 낳고 수많은 전조에 눈길을 주는 일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하게 발견하여 대처한다면 큰 재난을 방지할 수 있다.

재난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재난에 강한 나라는 있다. 소방방재청은 재난에 강한 나라를 목표로 대한민국의 조기경보기, 즉 카나리아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재난전조정보관리제도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재난 대비는 단순히 사고를 막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

박연수 소방방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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