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하청업체 쥐어짜기’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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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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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기업은 원가절감에 나선다.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를 아끼고 인건비마저도 감축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독점이 보장된 공기업이라면 모를까 예외는 없다. 대기업에는 중소기업에 없는 수단이 하나 더 있다. 원가를 낮출 필요가 생기면 우선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것이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요즘 대기업들은 다시 하청업체 쥐어짜기에 나섰다. 대기업이 납품가격을 후려치는 바람에 이익을 낼 수 없어 직원을 뽑을 엄두도 못 낸다는 중견·중소기업이 많다.

원가 절감액보다 커진 리콜 비용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서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방법을 배웠다.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원가절감을 잘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10년 전 도요타는 3년 동안 180개 부품의 가격을 30% 낮춰 100억 달러의 원가를 줄이는 계획을 세웠다. 차종 간에 부품을 공유화하고 납품 단가를 낮추는 원가 절감 전략을 꾸준히 밀어붙였다. 이 계획을 추진한 장본인이 바로 2005년 취임해 작년까지 도요타를 지휘했던 와타나베 가쓰아키 전 사장이다. 구매 분야에서 ‘짜고 또 짜는 방식’으로 원가를 낮췄던 그는 마침내 도요타를 세계 1위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와타나베 전 사장은 도요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원가 절감 드라이브를 걸면서 품질 검증에 미흡했던 탓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리콜을 무시하고 회사 안팎의 조언도 못들은 체했다. 도요타 노조는 2000년 이후 리콜이 급증한 원인을 찾지 못하면 회사의 장래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경영진은 듣지 않았다. 이때 노조는 과도한 비용 삭감과 급격한 생산 증대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요타는 처음에 리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미국 정부 관리가 직접 일본에 찾아와 강력한 대응책을 촉구하자 그제야 대규모 리콜에 나섰다. 리콜에 따른 비용은 납품 가격을 후려쳐 얻은 원가 절감 규모를 훨씬 초과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콜로 도요타가 치를 비용이 5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간은 55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봤다. 소비자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집단 소송을 낼 경우 물어줄 비용이 30억 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전자장치에서 결함이 확인될 경우에는 더 큰 파문이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무려 4000만 대 이상 리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수리 소송비용과 판매금지 경영공백에 따른 추가 비용은 원가 절감액의 몇 배가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 노조 상생에 앞장서야

도요타자동차에 밀린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는 이미 폐허처럼 변했고 GM을 무너뜨린 도요타도 위기다.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이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를 다녀와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GM이 무분별하게 확장하다가 파산을 맞았고 도요타는 자만으로 위기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현대차 노사는 도요타를 반면교사로 삼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단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경영진과 노조는 고임금을 보장하기로 약속하고 그 추가비용을 메우기 위해 하청업체를 쥐어짠다. 그러다 보면 도요타의 리콜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자동차회사든 전자회사든 부실부품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면 중소 하청업체에 적정한 납품가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하청업체도 살고 대기업도 경쟁력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자동차회사들이 도요타 같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 노사가 먼저 하청업체에 상생의 손을 내밀어야 할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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