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교 20년에 잇따르는 러시아 유학생 피습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9일 03시 00분


러시아 유학에 공포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러시아 유학생 심모 씨가 7일 모스크바 시내에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지난달 15일 단기연수 중이던 대학생이 러시아 청년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사망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 유학생의 수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5년부터 6명의 유학생이 공격을 받아 그중 2명이 숨졌다.

복면을 한 범인은 주위가 환한 오후 5시에 심 씨에게 달려들어 흉기를 휘둘렀다. 금품을 노린 강도 범행이 아니라서 외국인을 겨냥한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경찰도 상대적으로 치안이 양호한 모스크바 시내에서 발생한 사건인지라 아시아 아프리카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혐오 범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1991년 구소련 해체 이후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러시아에서는 국수주의자와 네오나치주의 단체가 크게 늘어났다. 러시아 젊은이들의 15%가량이 극우파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인종혐오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71명으로 2008년의 110명에 비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심각하다. 9월 30일이면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는데 이런 일이 잇따라 심히 유감스럽다. 러시아 당국은 한국인에 대한 공격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고 범인 검거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인을 겨냥한 공격이 계속된다면 무엇보다 우리 학생들이 발길을 끊게 될 것이다. 외국인 증오범죄가 들끓는 러시아에 한국 관광객과 사업가들도 방문을 꺼리게 된다. 이러한 사태는 러시아 경제와 한-러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주러 한국대사관은 러시아 정부에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해야 할 것이다. 2006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한국 유학생 사망사건을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당시 허승철 대사는 사건관할 경찰에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고 외교장관과 내무장관에게 신속한 범인체포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깜짝 놀란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스킨헤드 조직에 정보원을 침투시켜 범인 4명을 체포했다.

인종범죄는 강절도 같은 치안 범죄와는 다르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러시아를 방문해 수사를 독려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유학생과 교민도 위험지역 출입이나 취약한 시간대 외출을 자제하는 자구책을 생활화하기를 당부한다. 우선은 자기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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