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하준우]유이의 꿀벅지, 이상화의 금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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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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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가식 없는 향연인 밴쿠버 겨울올림픽 초반에 등장한 ‘금벅지’란 말은 의외였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의 허벅지를 일컫는 신조어다. 여성그룹 애프터스쿨의 가수 유이의 허벅지를 지칭하는 ‘꿀벅지’에서 나온 별칭이다. 성적 수치심을 준다는 비판이 있었던 터라 이 말은 ‘철벅지’로 바뀌기도 했다. 어찌 됐든 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갖게 한다. 당사자의 반응은 놀랍게도 비슷했다.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깨와 허벅지는 콤플렉스였다”(유이) “최고 단점인 허벅지를 꿀벅지라 불러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이상화)

비치는 모습이 곧 나인 세상

미(美)의 어원은 ‘양(羊)+대(大)’로서 아름다운 외관과 맛있다는 느낌을 나타낸다고 한다. 항상 먹을거리를 찾아다녀야 했던 시절 큰 양 한 마리는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맛있는 음식이었을 게다. 식욕과 아름다움을 연결한다면 미는 주관적 개념이 되지만 고대 그리스의 여신상에 나타난 조화와 균형미는 상당 기간 미의 객관적 기준이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누구나 미추(美醜)를 구분할 수 있다.

컴퓨터가 미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진은 남녀 30명에게 얼굴 사진 100장을 주고 매력 등급을 매기도록 했다. 컴퓨터가 등급을 토대로 얼굴의 기하학적 특징을 파악하도록 한 다음 새 사진을 보여주자 얼굴의 매력도를 사람과 다름없이 판단했다고 한다. 3개월, 6개월 된 아기도 어른이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얼굴 사진을 더 오래 응시한다고 하니 미는 객관적 현상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아기가 꿀벅지도 오래 응시할까. 실험 결과가 없으니 명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다. ‘V라인’ ‘쇄골미인’ ‘S라인’ ‘꿀벅지’ 등 신체 특정 부위에 미적 감각을 부여하는 단어의 생명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미의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단어들은 인류의 긴 역사에 비춰 잠시 명멸하는 불빛과도 같은 존재지만 주관적인 미를 중시하는 현대의 경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말 ‘아름답다’의 어원은 ‘알음(知)’과 ‘답다’의 합성어라는 설과 ‘나(我)답다’는 뜻이라는 설이 있다. 아기가 ‘나다운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주관이 발달되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주관은 사람과 부대껴 살면서 생기는 법이다.

몸 철학을 체계적으로 구축한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몸은 항상 자기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찌 생각하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친 모습이 자신의 모습으로 통용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매일 들여다보는 컴퓨터 모니터와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수많은 이미지가 전달되고 조작되고 변형되는 시대다. 미의 주관성에도 불구하고 투영된 모습에서 자신을 생각하기 손쉬운 세상이다. 꿀벅지란 말이 유행하자 여성 연예인의 허벅지는 주목 대상이 됐고 ‘원조 꿀벅지’란 말도 등장했다. 어떤 연예인을 닮았다는 친구의 한마디에 상심하거나 기뻐하는 세태다.

땀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찬사를

이상화의 금벅지는 유이의 꿀벅지처럼 대중의 시선에서 나왔지만 뚜렷한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연예인의 활동과 허벅지 사이에선 어떤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금벅지에는 운동선수로서의 자기 성취 노력이 엿보인다. 엄청난 훈련과 자기 극복의 의지, 강인한 정신력이 담겨 있다. 남의 모습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주관성이 드러난다. 금벅지라는 찬사는 정체성을 갖춘 ‘나다운 아름다움’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한다.

하준우 편집국 부국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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