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6·25 납북자가족의 눈물, 60년만에 닦아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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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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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관련법 의결 1년 걸려
정부 최근에야 “협상 의제로”
가족들 “생사라도 확인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납치 피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에는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져 있었어요. 이제야 투명인간처럼 잊혀졌던 6·25전쟁 중 납북자들의 한(恨)을 달랠 기회가 생겼습니다.”

23일 전화 너머로 들려온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61)의 상기된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4월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12월과 지난해 1월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잇달아 이 법안을 발의한 지 1년여 만이다.

김 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여야 의원 88명이 함께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법안은 외통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른바 ‘핫이슈’가 아니라는 점이 무관심을 불렀다.

정부의 무관심은 더 심했다. 역대 어느 정부도 6·25전쟁 납북자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남은 가족들이 2000년 가족협의회를 만들어 공론화에 나섰지만 통일부는 6·25전쟁 중 납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지금으로선 그 현황을 파악할 방법조차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가족들은 나이를 먹었다. 이경찬 가족협의회 이사(71)의 아버지는 1950년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였다. 최광석 가족협의회 운영위원(68)의 아버지는 당시 경찰 공무원이었다. 나라를 위해 일하다 가족들을 남겨둔 채 납치된 이들의 명예를 국가가 나 몰라라 한 것이다.

통일부는 올해 업무보고에서도 6·25전쟁 납북자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통일부가 6·25전쟁 납북자 문제를 남북회담의 협상 의제로 삼겠다고 가족협의회에 약속했다.
▶본보 2월 12일자 A6면 참조
“6·25 납북자 남북회담 의제로”


이번에 의결한 법률안은 6·25전쟁 중 납북 피해의 진상 규명을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명예회복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납북 희생자 추모 등 기념사업도 추진하도록 했다. 다만 납북자나 그 가족에 대한 개별 피해 보상 규정은 담지 않았다.

“우리는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망각에서 끄집어내 역사에 다시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사를 확인해 세상을 떠난 분은 유해라도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끝나지 않은 전쟁 6·25의 질곡을 끝낼 국가의 의무 아닌가요.” 이 이사장의 말이다.

윤완준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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