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영균]호화 청사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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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2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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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호화판 청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수천억 원을 들여 근사한 청사를 세웠거나 지을 계획인 시장이나 구청장은 국민 세금을 함부로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공직자로 찍혔다. 신청사를 구상하던 일부 지자체는 계획을 보류했지만 이미 건설 중이어서 중단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감사원이 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성남시를 비롯한 24개 기관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에너지를 최고로 낭비하는 청사를 지었다”고 질타했다. 이래도 공공 청사를 세우려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더 나올까 싶다.

비싼 땅에 낡은 건물이 오히려 낭비

얼마 전 인감증명을 떼러 오랜만에 동사무소에 간 적이 있다. 전에 있던 허름한 건물은 헐리고 대신 날렵한 디자인의 새 주민센터가 들어섰다. 수십억 원이 들어갔을 건물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자 잘 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탓일까. 호화판이든 에너지 낭비든 내 집 근처에는 깨끗한 시설만 들어서면 좋다고 한다. 소각장을 짓겠다는 시장 구청장은 주민소환을 당하는 터라 청사나 회관을 짓겠다는 시장이 늘어난다. 호화 청사, 낭비 시설의 기준이 모호한 탓이다.

명동성당 부근의 남대문세무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있던 3층짜리 낡은 건물을 부수고 재작년 15층으로 최신 건물을 올렸다. 외관만 보면 호화 청사라 할 만하다. 그러나 경제성을 따지면 과거의 낡은 청사가 오히려 호화판이다. 예전에는 200명 남짓한 세무서 직원들이 4297m²(1300평)의 금싸라기 땅을 독차지했지만 이젠 여러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이 입주해 연간 50여억 원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기 때문이다. 건물이 크고 새것이라고 해서 호화 청사라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3222억 원을 쏟아 붓고 매년 54억 원의 유지관리비가 드는 성남시 청사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남대문세무서 재개발 사업은 국유지치고는 이례적이다. 국유지에 지은 건물에 민간기업의 입주를 허용한 것도 흔치 않다. 괜히 재개발이랍시고 힘들게 추진했다가 감사나 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대부분 전용 청사로 짓는다. 도심에 있으나 활용도가 낮은 국유지와 노후 건물을 에너지 절약형 첨단 복합건물로 바꿔 국유지의 부가가치를 높였다면 국부를 늘리고 국민 세금도 아낀 셈이 된다.

호화 청사 논란이 한창일 때 안양시는 100층짜리 청사 건설계획을 발표해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그러나 잘만 하면 남대문세무서처럼 성공모델이 될 수도 있다. 민간자본 유치가 관건이겠지만 국민 세금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민간기업을 입주시켜 연간 수백억 원의 임대료 수입까지 올린다면 100층짜리 최신 빌딩인들 누가 호화 청사라고 비난할 것인가. 오히려 안양 도심의 알짜배기 땅 4만6000여 m²(1만4000여 평)를 수백 명 안양시 공무원들만 사용한다면 그게 바로 호화 청사일 것이다.

기회비용 따지면 세종시가 호화판

세종시도 원안을 보면 공공기관 청사다. 창원시만 한 크기에 공공기관만 들어서고 공무원들만 이용한다면 세종시 정부청사는 호화 청사 중에서도 최대 규모에 해당할 것이다. 민간기업이라면 안양시청을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고 세종시처럼 허투루 개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활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국유지는 국민의 소유이지만 주인이 없는 땅처럼 관리가 소홀하다. 하물며 도로 하나 다리 하나 건설할 때도 타당성 조사를 거친다. 수백억, 수천억 원짜리 시청사 구청사 정부청사 공사에 경제성도 따지지 않는다면 이런 낭비가 없다. 따져 본들 무슨 소용이냐는 반문도 나오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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