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떡값 챙기기 바쁜 교장, 교육에 매진할 리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방과 후 학교’ 위탁업체로 선정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서울지역 초등학교 전현직 교장 5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2003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방과 후 학교 영어·컴퓨터 교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700만∼2000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초등학교의 방과 후 학교가 교장들의 뒷주머니를 불려주는 수단이 된 것이다.

업체는 뇌물 제공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받는 수강료나 교재비를 올렸다. 교장이 챙긴 뇌물은 고스란히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으로 떠넘겨졌다. 교장이 열의를 쏟아 공교육을 강화해도 사교육을 따라잡기 힘든 판에 돈을 받고 위탁업체를 골랐으니 사교육을 이기는 경쟁력이 나올 리 만무하다. 뒷돈 챙길 궁리나 하는 교장에게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고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장들이 뇌물을 받은 수법은 너무나 집요하고 치사했다. 이들은 방과 후 학교를 폐쇄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수강생 모집공고 결재를 미루고, “교실이 소란하다”느니 하는 트집을 잡아 강사를 괴롭혔다. 뇌물은 현금으로 교장실에서 오갔다.

일부 교장의 비리와 일탈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7년엔 초등학교 교장들이 학교 식자재 및 교재 납품업체에서 수년간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들통 났다. 같은 해 한 초등학교 교장은 아들 결혼식 때 학부모에게 청첩장을 돌려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 8월에는 서울 중고교 교장들이 급식업체 사장과 해외 골프여행을 간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해 9월엔 불량 칠판을 구입하는 대가로 수백만 원의 뒷돈을 챙긴 초등학교장 13명이 적발됐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맡은 일부 교장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학교운영위원회는 제대로 감시감독을 못하고 비리 교장의 들러리나 서는 꼴이 됐다. 학교운영위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장학사 금품 수수, 인사잡음, 학교시설 공사업체 선정 뇌물 같은 교육계 비리가 곪아 터져 나오고 있다. 교육자들의 명예심이 사라졌는가. 어제 서울 11개 지역교육장을 포함한 서울시교육청 간부 17명이 자숙의 의미로 보직사퇴를 결의했다지만 이벤트성 자성(自省)만으로 고질병이 근절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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